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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쥬 Mar 17. 2022

고뇌하는 젊음은 아름답다

용두암 뷰

 

 파리의 몽마르트르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아침 7시가 좀 안 됐을 때였다. 마침 그날이 1월 1일이라서 해 뜨는 광경을 보려고 와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전날에 밤새 술 마시고 있다가 만취상태에서 소리 지르며 일출을 보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동기가 어찌 됐든 소박하고 고요한 일출을 보면서 이 동네가 지닌 매력을 느껴봤다. 광장이라고 해도 사이즈는 동네 놀이터 정도의 크기인데 이 작은 장소에서 세계의 거장들이 늘 모여서 뱅쇼와 압생트를 마시며 가난했던 예술가들의 현실에 서로를 위로하며 미래를 꿈꿨다고 하니 그야말로 초럭셔리한 아지트가 아닌가. 이 테르트르 광장은 고흐, 피카소, 모딜리아니, 모네, 르누아르와 같은 19세기의 유럽 예술을 휘감았던 명작들을 남기고 간 이들의 은신처이자 이상향을 나누었던 아지트였던 것이다. 주머니 사정은 늘 가난했고 살고 있는 집에서 언제 쫓겨 날지 모르는 처지였던 화가들도 많았으나 예술가의 혼으로 무장된 그 자존심을 어디서든 표출할 곳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르 물랭드 갈레트의 무도회’라는 작품은 르느와르의 유명한 그럼이다. 이 안의 르 물랭드 갈레트라는 장소는 이젠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보불전쟁의 패배로 인해 수많은 패잔병들과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전쟁에서 수행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군인들과 가난에 찌든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이 동조해서 코뮌을 구성했으나 정부에 의해서 피의 주일이라는 잔혹한 결과와 상처만 남았다. 이 무도회에 모여든 시민들의 마음엔 보불전쟁의 패배와 파리코뮌의 상처를 잊고자 하는 파리지앵의 바람이 있었고 또한 그들에겐 안식처이자 아지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온라인과 유선상으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으니 그야말로 모두가 얼굴을 맞대고 모여서 백 프로 오프라인 모임만을 추구했던 그런 장소가 여러 군데 그 동네에 존재했을 것이다. 작가와 화가 음악가 등 많은 이들이 그곳에 모여들어서 초현실적인 얘기만을 했을지언정 누구 하나 흉보는 이가 없었을 테니 마음은 얼마나 편하고 행복했을까. 


 ‘날개’를 쓴 이상이 차렸던 경성의 다방 제비도 그 험난했던 역경의 시절에 문인들과 화가들에게는 서로를 교감하고 서글펐던 시대의 슬픔을 달랬던 아지트였다. 경성의 문학과 예술의 천재들이 유토피아를 꿈꿨던 그 시절의 정신적인 아방가르드 또한 고뇌하던 아티스트들의 탈출구가 되어 주었던 것 아닐까. 화가를 꿈꿨던 시인 이상의 제비다방은 그냥 커피숖이 아닌 종합예술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시와 소설’이라는 잡지에 남긴 그 유명한 이상의 말이 있다.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절망했던 그 시절의 현대인이 있어서 문학과 예술은 발전하고 지금까지 대를 이은 DNA를 퍼뜨리며 승화하는 가보다. 이상 시인의 절친인 소설가 박태원의 후손이 봉준호 감독이고 또 하나의 절친인 화가 구본웅의 외손녀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이라고 하니 그 뜨거운 피는 식지 않고 계속 흐른다는 걸 느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절망하고 고민하는 지금의 현대인은 이 시대와 미래에 필요한 예술과 기술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고뇌하고 연구하는 젊음과 사람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귀중하다.


 글을 쓴 지가 8년째 들어선다. 글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한 수필이 몇 권이고 나머지는 나의 일과 관련된 취업과 어학에 관련한 서적들인데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이 출간이 된다면 벌써 일곱 번째가 되니 나의 버킷 리스트인 죽기 전에 10권의 책 쓰기는 얼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어디든 시간 나면 갑자기라도 가서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고 나의 감성 게이지를 조금씩 평소에 채워놔야 글 쓸 때 도움이 되는데 재작년에 허리디스크가 심하게 온 후로는 멀리 기차를 타고 가거나 지방에 놀러 가는 일은 아예 마음을 접게 되었다. 소소한 일상과 주변에서 왔다 갔다 걸어 다니는 친근함이 나의 행복이 되었고 그런 환경들이 아팠던 나에게는 작은 목표이자 기쁨이었다. 그러나 나도 나만의 아지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기분 좋은 그런 확 트인 뷰를 가진 공간에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서 뜨개질이건 독 서건 글쓰기 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제주도에 가면 마지막 코스로 꼭 용두암 앞에 들렸다가 공항으로 향한다. 그곳은 내가 여태껏 가본 바닷가 중에 제일 멋진 곳이라고 해야 할까. 그 앞에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앉아 있노라면 세상 시름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맘이 편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같이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치유가 되는 듯한 바다 바람을 느끼며 하루 종일 책이라도 읽고 싶은 맘이 굴뚝같이 생겨난다. 제주도에 사는 것이 특별히 부럽거나 한 적은 없는데 용두암 뷰를 가진 그 동네는 정말이지 질투가 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에 이사 온 동네가 한강고수부지가 가까워서 산책할 때 들르곤 하는데 푸른 바다 대신에 잔잔한 강물이 흐르고 건물들이 양쪽으로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강변을 걸을 수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점점 봉우리가 터지기 시작하는 벚꽃과 이미 여기저기서 웃고 있는 개나리들을 보면서 매일 조금씩 나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 나만의 아지트는 내 마음속에 있다는 걸 조금씩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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