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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쥬 Oct 09. 2023

고흐의 마지막 편지

정리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돼 간다. 집 근처 작은 공간에서 엽서 사이즈로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어반스케치가 이젠 나무와 산을 배경으로 한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내는 그림이 나오고 있다.  물론 고수님들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작품이지만 나는 내 그림이 너무 맘에 들고 사랑스럽다. 

나의 책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는 삽화를 목표로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젠 어느덧 삽화의 수준을 뛰어넘어버렸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몇 년 동안 글 쓰는 것을 잠시 멈추게 되었다. 애틋한 감성이 두 군데서 동시에 나올 수는 없나 보다. 

미켈란젤로의 천장벽화를 보고 눈물이 나던 그 날이후로 그림에 대한 동경이 조금씩 자리 잡았고 미술관들을 돌아보며 감히 붓을 들어볼 수 있을까라는 상상조차도 나에겐 어려운 꿈이었는데 그래도 도전이라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어서 그것만으로 내 노후의 삶이 꽉 찬 것 같아서 벌써부터 화실을 꾸밀생각을 하니 저절로 흐뭇해진다. 

 고흐의 일생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살아있는 동안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 힘든 삶의 여정 안의 외로움 안에 가끔은 나 자신을 투영해 보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하게 다잡아 보려고 상념에 잠기곤 한다. 우리들의 삶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 또한 보상받을 만한 결과를 받으려면 몇 배나 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한다.           

좀 느슨하게 살아도 되고 크게 티가 나지 않았던 약간의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그리고 너무 버겁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생활을 한지가 이젠 슬슬 25년이 다돼 간다. 아직도 더 일할 수 있는 나이는 남아있지만 나 스스로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내 역량밖의 일들과 예상 못한 일들로 마음을 자꾸 닫게 되고 잠도 설치게 된다. 몇 가지의 일들을 해내며 누구보다도 훌륭하다 칭찬받으며 살아왔는데 이젠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바로 지고야 만다. 그렇게 해치고자 달려드는 사람들을 감내할 만한 기운도 체력도 더 이상은 남아있지 않나 보다.      

어제는 아끼는 제자 결혼식에 가서 축사를 하고 왔다. 주례가 없었기 때문에 거의 주례 겸 축사가 되었지만 내 인생에 첫 축사 겸 주례가 되었다. 그런 기회를 준 제자에게 고맙고 영광이었다는 말을 다시 전하고 싶다.  8년 전에 일본에 엔지니어로 취업을 시킨 착실하고 야무진 제자였는데 어느덧 일본에서 자리를 잡고 더 좋은 직장에서 승진도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되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축사를 한국어와 일본어로 준비해서 읽어 내려가는데 갑자기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왔다. 고마운 스승으로 생각해 주고 축사를 부탁해 준 제자가 너무 기특하고 또 혼자서 열심히 자기의 인생을 꾸려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해서 모든 것이 다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났다. 나 또한 교단에 서 있다 보면 힘든 학생들에게 시달리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다. 요즘은 그 횟수가 더 잦아지는 것이 지금의 세대들을 감당 못하는 내가 너무 쓸모없어진 건 아닌가 싶어서 사회생활을 이젠 마무리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꼰대라는 소리를 서슴없이 스승에게 하는 것이 서운하기도 한 나는 정말 꼰대인지. 제자들에게 맛있는 간식과 식사를 사주면 그래도 교수님 먼저 드세요라는 소리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나는 구세대인지. 자기 필요할 때만 톡과 메시지를 보내고 내가 대답하면 응답도 없고 곧 차단해 버리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은 지금 시대를 못 쫓아가는 사람인건지.      

늘 상처받고 그 상처가 아물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툭툭 털어지지가 않는 나는 진짜 은퇴를 해야 하는 것일까.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림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 문장이 내 심금을 울리고 울컥하게 했다. 나만이 가지고 있던 방식대로 제자들을 아끼고 사명감을 가지고 왔던 지금의 인생길의 막다른 기로에 서 있는 나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내보일 수 있는 카드처럼 그 문구가 그렇게도 심오하게 나를 울리고 있었다.      

그래도 행복을 느끼게 해 줬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기쁘게 다른 길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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