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개척자들
십여 년 전에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란 곳에 가본 적이 있다. 미니 네덜란드를 구현해 놓은 독특한 분위기의 작은 섬은 멀리서 사진 찍으면 그야말로 일본인지 유럽인지 구분이 안 가게 잘 만들어놨다. 그땐 그저 나가사키의 카스텔라를 사서 먹고 사진 찍느라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가사키는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에도 시대에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양과 중국과의 교역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국제적인 항구 도시였다. 철저하게 서양의 문물을 막고 있었으나 유일하게 숨구멍을 남겨놓은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신의 한수이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학문과 의학으로 우회진입한 네덜란드의 지혜 덕분에 서양의학과 그에 수반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주변국가까지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늘 그렇지만 숨은 개척자들과 희생자들은 존재하듯이 주변의 박해와 비난을 이기고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 있었다.
스기타 겐파쿠와 마에노 료타쿠의 『해체신서』 번역을 시작으로 많은 네덜란드어 번역서가 등장하였고 이에 따라 새로운 번역어가 다수 생성되면서 난학(네덜란드를 통해서 일본으로 들어온 유럽의 학문, 문화, 기술 등을 말하거나 네덜란드어를 통해 서양의 문화나 학술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은 일본 사회에 크게 보급되었다. 해체신서란 글자 그대로 해부학에 대한 책이다. 유교사상 가득했던 에도시대에 그런 흉측스러운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책으로 소개하여 전파하였다고 하니 주변에서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었을까. 스기타 겐파쿠는 원래 한의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의학용어들의 근간이 된 해체신서를 발간하기까지는 한 가지에 단단히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스티브잡스가 한 명언 중 마음에 찡하고 남아 있는 내용이 있다.
'우리 주변에 뭔가에 미쳐있는 사람들, 사회 부적응자, 반항아, 말썽쟁이, 적합해 보이지 않는 사람, 보통사람들과는 시각이 다른 사람, 그들은 사회적 규칙을 따르지 않고 우린 그들을 찬성하거나 반대하고 찬양하거나 비방할 수 있지만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들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니까요. 누군가 이들을 미쳤다고 말할 때 우리는 천재를 봅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친 애들이 정말로 세상의 미래를 바꾸니까요. '
죽기 전에 긴자 센비키야의 멜론을 먹고 싶어 했던 작가 이상과 살아생전 빛을 보지 못했던 고흐의 천재성과 불우한 사회적 정치적 현실 속에서 다 펼치지 못했던 그네의 작품들과 예술혼 그리고 안타까운 인생은 그 시절 심금을 울렸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우상인 여러 영웅들과 함께 영원히 기억 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남아있다.
나가사키짬뽕은 아마도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그 뜻은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으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