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전
유난히도 뜨거웠던 올여름, 나는 데뷔전을 치렀다. 소박한 꿈을 갖고 붓을 들었던 설렘에서 출발했는데 어느새 프레임을 걸치고 걸리게 되는 찬란한 무대에서 한껏 멋을 부리고 말았다. 그 첫 무대는 양평에서 데이트코스로 유명한 두물머리 근처 양수리의 아담한 힐링센터다.
연꽃들이 전시장 앞을 잔뜩 메워줘서 모네의 수련을 공부하기 딱 좋은 장소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고, 그런 기막힌 뷰를 가진 새초롬한 동네 주민센터에서 첫 데뷔전은 나의 여름방학을 꽉 채워줬다. 그리고 다음 스테이지를 꿈꿀 수 있게 만들어줬다.
한번 시작하면 뭐든 끝을 보고 마는 성격인지라 살짝 걱정은 되지만 남들보다 부지런함을 타고나서 다행히도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실천하고 살고 있으니 한번 더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외로움과 우울감은 그림을 그리면서 많이 잊을 수가 있었고 일과 취미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은 나이를 먹는 것도 잊게 만든다.
폴 세잔의 <사과와 복숭아가 있는 정물>을 보고 피카소와 마티스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세잔은 살아생전에 주변으로부터의 인정은 그리 오랜 기간동안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수많은 유명 화가들이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것에 비하면 그래도 좀 나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명시절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 그 의지가 많은 거장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던 사과그림을 탄생시킨 것이 아닐까.
스티브잡스의 고집스러운 성격과 천재성 그리고 일중독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스마트폰을 개발했듯이 자신이 집념을 갖고 집중하는 것에서는 최고가 돼버리는 것을 우리는 보고 듣고 또 경험한다. 그러고 보니 폴 세잔과 스티브잡스는 둘 다 사과(APPLE)로 유명해졌네!
나혜석 화가의 '아껴 무엇하리 청춘을'에 나왔던 글귀들이 떠오른다. ' 장차 올 청춘이 엇든들 앗겻슬는지 모르나 임의간 청춘을 앗기지 안나니 청춘은 들쩟섯고 얏핫섯고 얠밧섯고 짤넛든 거시오 나이 먹고보니 침착해지고 깁고 두덥고 길다. 청춘을 헛도이 보내엿든들 얏기지 아닐배 아니나 빈틈업시 이용한 청춘을 앗길 무어시 잇스며 지난 청춘을 앗겨 무엇하리오 장차 올 노경이나 잘 마지러 하노라 '
우리의 청춘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찬란히 빛나고 있고 아낌없이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고귀하고 소중하다. 나의 데뷔전은 뜨거웠던 여름날의 태양만큼 열정적이었던 노력들에 감사하고 두근거렸던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