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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쥬 May 08. 2022

일기일회(一期一會)

뷰티풀 마인드 (Beautiful Mind)

  

 한 사람의 평생이라는 일기(一期), 한 번의 만남이라는 일회(一會), 일본의 다도(茶道) 정신에 근간이 되는 개념이면서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지금의 이 자리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정신이다. 중국 당나라에서 유행했던 다(茶)문화가 일본의 나라시대부터 전파되어 차를 마시는 풍류와 생활예술이 발전하였다. 유럽의 귀족들이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본인의 집에 예술품들을 전시하며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했듯이 동양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으니 그중 다도가 정신적인 중심을 잡아 준 것으로 보인다. 메이지유신 이후로 일본도 서양문화에 대한 대 유행 때문에 전통문화의 위기가 찾아왔었으나 다도를 중심으로 미술작품 감상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지금의 갤러리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배우고 싶은 것들을 몇가지 뽑으라면 꽃꽂이, 민화, 수묵화와 같이 정적인 것들이 손에 꼽힌다. 슬슬 나도 정신적인 수양이 동시에 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가나보다. 다도처럼 무언가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정체성과 그 중심에서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것들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원 석사과정 때부터 많은 것을 지도해주셨던 멘토 교수님은 최첨단의 반도체공학을 전공하셨고 전자공학과 교수님으로 계시지만 태극 건강법과 효소 그리고 명리학에 관심이 많으셔서 나에게 항상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반도체 공학을 연구하던 중 유해 화공약품 독에 노출이 돼서 건강이 매우 안 좋으셨다고 한다. 그때부터 건강 회복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셨고 태극 건강법으로 현재까지도 매일매일 정해놓은 건강 규칙을 실천하고 계신다.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열 가지의 건강 십훈 중에 소차 다보(小車多步)와 소분 다소(小憤多小)가 나에겐 앞으로 더욱 신경 써서 이루고 싶은 내용이었다. 그 의미는 차를 적게 타고 많이 걷기 그리고 분노를 피하고 언제나 웃자라는 내용이다. 이 두 가지만 매일 실천해도 크게 걱정할 병은 안 걸리지 않을까 싶다. 요즘 매일 만보를 걸으려고 정말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노력하고 있다. 아침마다 집 앞 공원까지 왕복하면 대략 칠천보는 나오고 저녁에 한번 더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보면 만보는 거뜬히 채워진다. 그렇게 걸으면서 좀 전까지 맘속에 갖고 있던 화들을 덜어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화나는 일과 억울한 일들을 겪으면서 그것으로 인해 마음의 짐들을 하나둘씩 안고 산다. 각자의 나름대로 그 짐들을 내려놓고 잊고는 살고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문제는 다른 것들도 같이 희미해져서 요즘엔 기억 안나는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지만 말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존 인물인 존 내쉬라는 천재 수학학자의 인생을 보며 의미 있는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조현병으로 인해서 천재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겐 사랑하는 아내가 헌신적인 보살핌과 희생으로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내었고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였던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강단에 서게 되었다.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외로운 반복적인 일상과 상황들을 본인 자신이 이겨내야만 한다. 그것을 선택하느냐 않느냐는 본인의 취향이고 자유이지만 그 주변의 의미 있는 타인들은 자기가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이고 그저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선행이고 사랑이다. 늦은나이까지 학위를 위해  매일 되는 과로와 몸에 무리가 가는 일정을  버텨왔던 나에게 위로와 힘이 돼 주셨던 멘토 교수님은 내 인생의 뷰티풀 마인드를 가진 의미 있는 타인이셨다.


 인연이란 이렇게 잔잔하게 내 곁을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들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내는 동기들이나 선후배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혀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낸다면 그건 인연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누구를 대하든 일기일회의 정신으로 진지하고 소중하게 대해야 이상적인 관계로 남을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목적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 목적이 더 이상 없어지면 또 다른 만남을 추구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관계들 속에서 지치고 마음을 닫게 되기도 해서 점점 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지는 것도 요즘 내가 겪는 일들 중 하나이다.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에서처럼 아련하고 순수한 첫사랑은 차라리 다시 안 보느니만 못하다는 내용이 맞는 것인가.  옛 추억의 사람들은 그 상태로 내 머리와 마음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만남보다는 오랫동안 내 곁에서 한결같이 묵묵히 있어준 인연들에게 마음을 다해 더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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