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쥬 Sep 30. 2023

아빠의 일기장

갈비탕과 돈가스

추석 연휴 때 부모님 댁에 갔다가 아빠의 일기장을 읽게 되었다. 그날그날 일어났던 일을 포인트만 적어 놓으셨다. 그래도 20년 동안 거의 매일 써 오셨는데 그 성실함과 한결같음에 감동을 하면서 읽었다. 엄마는 옆에서 내가 키득키득 대니까 새삼스레 옛날 일에 화냈다 웃었다 하셨다.      

 하루의 일과는 비록 짧게 쓰여 있었지만 나름대로 매일매일의 제목이 있었고 그 매일의 중심에는 엄마와 무엇을 했고 어떤 메뉴로 식사를 했는지였다. 물론 자식들의 변화나 다른 친척들 혹은 산에 같이 다니시는 분과의 일상들이 적히긴 했으나 마무리는 엄마의 일상으로 마무리됐었다. 점점 엄마의 호칭이 와이프, 이 권사, 이여사님으로 바뀌기는 했으나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장 많이 기록한 내용이었다. 어떤 날은 엄마와 사소한 일로 말을 안 하고 있다고 쓰여있었는데 그날의 제목은 ‘냉전’이었다. 이렇게 귀여운 제목에 또 한 번 혼자서 웃으며 꼼꼼히 한 장 한 장 읽어 나갔다.      

 나와 내 동생에게 유난히 힘든 시기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이 있듯이 우리 가족도 몇 번의 고비들이 있었는데 아빠는 그런 내용들은 적지 않으셨다. 마음 아팠던 것들은 속으로 삭이신 모양이다. 그때 분명히 아빠는 앓아누우실 정도로 속상해하셨는데 그런 내용들은 전혀 언급을 안 하셨다. 아마도 쓰실 힘조차 없으셨던 모양이다. 가끔 동생이 새벽에 일찍 일 때문에 나가면 부모로서 맘이 아프다는 내용이 한번 정도 있었고 그 외에는 일기장에서조차 내색을 안 하셨다. 자식에 대한 안 좋았던 것은 타인에게 절대 얘기 안 하게 되는데 내가 자식을 두고 있다 보니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것이 아님에도 내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약점이 될 만한 것은 써놓지 않으셨다.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적이 참 많았다. 물론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드리려고 노력하고 나의 성공으로 부모님에게 뿌듯함을 느끼게 해 드리긴 했으나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일들로 순간순간 상처를 드렸었다. 하지만 그 일기장엔 그런 내용들은 아예 흔적조차도 없었다. 그저 ‘우리 딸이 용돈 줘서 기뻤다’ ‘우리 딸이 갈비 사줘서 너무 잘 먹었다’ ‘우리 딸이 이사하는 날 와이프가 무릎 수술하고 입원해 있어서 못 도와줘 너무 속상했다’ ‘우리 딸이 박사학위 받아서 기뻤다’ ‘우리 딸이 일본 출장 갔다 오는 날 짐이 많아서 내가 공항에 마중 나갔다’처럼 딸에 대한 소소한 행복들만 적혀 있었다.           

 아빠의 일기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메뉴와 제목은 갈비탕과 돈가스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집 앞에 있는 돈가스 집에 가서 사장님 내외분과 이런저런 말동무도 하시고 내 자랑도 하실 겸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정도는 그 집 돈가스를 드시러 가는 듯했다. 계속 기름진 음식을 드셔도 괜찮을까 걱정도 됐지만 늘 가시던 곳에서 편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이 좋아서 가시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허리디스크로 자주 못 가는 대신에 동네 인심 좋은 분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에게 평소에 드시고 싶은 것 사드시라고 엄마 카드에 항상 용돈을 넣어놓는다. 그런데 항상 돈가스와 갈비탕 외에는 절대 그 카드를 쓰지를 않으신다. 좀 비싼 것도 사드시고 장도 보고 하시라고 해도 만 사천 원 하는 돈가스 정식과 한 달에 한번 정도 드시는 갈비탕이 가장 비싼 메뉴이다. 자식이 주는 돈은 쓰기가 아까워서 그러실 것이다. 나 또한 아들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용돈을 주거나 장학금을 받아서 전액 갖다 주면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 아들 통장에 넣어둔다. 고생해서 번 그 돈을 도저히 쓸 수가 없었는데 부모님도 그런 맘이시겠지.      

 아빠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사우나를 가셨다. 요즘은 못 가고 계시지만 옛날부터 사우나는 가장 좋아하는 하루 일상 중 하나였다.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고 특별히 소일거리가 없는 노년에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나도 가끔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소박한 하루에서 사우나 일정은 아빠에게 많은 위로가 된 듯하다. 젊은 시절에 한가닥 했던 사람들도 은퇴 후에 사회생활을 안 하게 되면 왜 다들 라이프사이클이 비슷하게 닮아갈까. 경제활동을 할 때와 안 할 때의 차이는 사람을 너무 금세 늙게 만들어 버린다. 외로움과 고립이 주는 사회적 박탈감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노인들에게 무료한 하루의 시간을 죽이는 사람처럼 변하게 한다. 그나마 사우나와 산을 다니시는 아빠는 비교적 알찬 노년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아빠는 엄마와 갈비탕을 드시러 드라이브하면서 근처의 갈비탕집을 갈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하신다. 유난히 소식하시고 입이 짧은 엄마가 한 그릇 다 비우는 것이 갈비탕이라서 그날은 엄마와의 만족한 외식 에피소드로 아빠의 일기장은 풍요롭다. 또한 집 앞의 돈가스를 드시면서 딸을 위해 이것저것 덤으로 챙겨 올 수 있어 두배로 즐겁다고 하시니 그 어느 비싼 레스토랑에서 드시는 것보다 삶의 행복지수는 몇 배가 높은 것이 아닌지. 지금은 운전을 못하시게 돼서 많이 답답해하시는 것 같아 많이 안쓰럽다.      

   자식이 철이 들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될 때면 부모는 떠날 때가 된다는데 그 말이 요즘엔 자꾸 와닿는다. 젊었을 때는 공부하고 일하느라 그리고 내 자식을 키우느라 부모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는데 내 자식이 크고 이제 한숨 돌릴 때가 돼가니 내 부모님은 너무 연로하셔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때가 되었다. 참 서글픈 삶의 여정이다. 그렇게 해바라기처럼 짝사랑만 하다가 눈을 감을 때까지도 자식 걱정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부모의 운명이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일기일회(一期一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