妄 비다, 없다, 헛되다
사랑했던 걸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은 과연 좋은 사람이었을까
이제는 인정한다
나는 너를 죽어 마땅할 정도로 사랑했음이 분명하며
너를 사랑함과 동시에 따르는 그 어떠한 값도 치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하기에는 너무도 명확했던 것을
은연중에 나도 알고 너도 알았다
사랑한 모든 것들의 마지막을 보고 느낀 것은 사랑하는 것만큼 괴로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나를 더 채워주기를 바라고,
사랑하기에 더욱더 내 곁에 남기를 원하고,
사랑하기에 그 눈이 나만을 바라보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결국 나를 떠나가는 모든 것들은 내가 사랑했던 것
비고, 미처 채워지지 못한 마음의 여백을 나로 채워나가야 하는데
나를 메워줄 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가 끝인 줄 알았던 바닥은 발악하면 할수록 더 깊고 축축하기 짝이 없는 밑바닥으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이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수록 멀어지기만 한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마주할 날이 온다면 그날은 볼품없는 내 하루들 중 가장 칙칙한 하루가 될 것 같다고 확신한다
"어떻게 지냈어?"
라는 진부한 말 따위는 건네지도 않은 채 서로의 눈과 머리에 저장하기 바쁘겠지
너무 원망스러운 나의 사랑이었던 불쌍한 사람,
겨우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하루의 이 시간에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 가지 또 확신할 수 있는 건 그건 나를 향한 죄책감이 아닌 분노감이겠지
위악을 부리는 게 아니다
너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할 것이고 나는 너를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렇기에 당신은 오로지 당신만을 생각하며 나를 죽일 수밖에
참 우스운 일이다
잘 지내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네가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 올려다보는 하늘이 새파랗지 않게,
부는 바람이 내게 줬던 모든 상처들과도 같은 온도이길
나는 이제 나의 세상으로 다시 되돌아가야지
허망으로 가득 찬 나의 흑백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