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부재

by 배 지원

이미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다시 매만져 정돈해도 처음과 같아질 수 없다

눈물 한 방울이라도 스며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조각 사이사이를 비집고는 기어코 새어 나온다

딱 한 방울에도 그리 무색하게

그러니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뱉어냈겠던가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싫어졌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워졌다는 게 맞겠지

한 자 한 자 담아내기 위해 다시 그리고 생각하기를 수백 번 정도 하니 꿈에 자꾸 네가 나온다

기억하기도 싫은 그때의 기억들이 자꾸만 나를 깨운다

내 상처를 내가 후벼 파기 좋은 짓이다

흉터가 몸에 새겨지지 않는 일종의 자해

한 번은 지독하게도 네게 사랑받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나를 죽일 듯이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내가 너를 바라보던 눈이었다

너는 내가 너를 볼 때의 눈빛으로 나를 사랑했다

꿈은 자는 동안 쭉 꾸는 게 아니고 잠에서 깨기 몇 초 전에 스쳐 지나가는 잔상이라는데

그 몇 초 남짓한 잔상에 나는 한없이 무너졌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악몽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무섭다

눈을 뜨면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싫어

다시 그곳에 있기 싫어

그 시간으로 돌아가기 싫어

나는

너와 내가 싫어


영원하자던 그날의 약속은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켜지지 못했다

만약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벌을 받은 거겠지

사랑을 그리 대한 너에게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너의 몫일 죄악감이라는 수갑이,

사랑을 끝내 지키지 못한 나에게는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원망의 잔해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철저하고 잔인하게 함께 썩어갈 것이다

이게 우리가 받을 벌이구나

단 한순간도 우리였던 적 없던 우리의 마지막이구나


딱히 죽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그만하고 싶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이 영원의 부재 속에 머무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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