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김조민
책장을 갈래 없이 넘겼다
하필 내 손에 닿은 것은 오래된 유머집이었다
눈을 한 번 감을 때마다 전등이 꺼졌다 해묵은 우스갯소리가 팬터마임으로 펼쳐졌다
여행을 좀 다녀오면 괜찮아질 거에요
좌우로 길게 움직이는 그네가 공중에서 두어 번 회전하자 꽃가루가 날렸다 전력으로 달리는 말 위에 서 있던 사람이 훔쳤던 것은 명백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애매해지는 것이 싫었을 뿐이에요 이해하시죠?
온순하지만 순종적이지 않은 사자가 사육사의 채찍에 앞니를 드러내며 뒹굴었고 큰북을 멘 피에로가 조롱의 목적으로 행진풍의 박자를 밟았다 도리스 히톤을 입은 남자가 입에서 화염을 내뿜었지만 가짜였다
다 잘 될 거에요
외발자전거가 프로펠러에 묶인 박수갈채를 뜯어내느라 뒤뚱거렸다 훌륭했던 덕목이 넘어진 것은 그 전이었고 비밀스런 고뇌는 이미 도망친 뒤였다
당신의 앞날을 응원할게요
다양한 개인기가 미학적으로 끝날 무렵 내가 쥐었던 유머집에서 발췌해야 할 것은 오로지 ‘사실주의적 눈속임’이었음을 알아채고 말았다 무언의 서커스가 갑작스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