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조민 Oct 03. 2024

상자를 열어 보아요

Poem

상자를 열어 보아요     


김조민

              

  어떤 상자는 열자마자 사라지는 것들로 채워져 있어요 대부분 잘못된 시간의 틈 속으로 숨지만 적절하지 않게 튀어 오르다 흩어지기도 해요 부끄러움이 많아서라고 알려져 있지만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계절을 언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런 상자를 만났다면 당황하지 않아야 해요 눈치가 엄청나거든요 우선 단정하게 단추를 채우고 눈을 감아 보세요 웃음은 허용되지 않지만 아마 굉장히 힘들 거에요 모든 것이 부풀었다면 자세를 낮추고 눈을 천천히 떠 보세요 떠나갔던 발자국이 웅성거리며 돌아오고 있어요 이제 되었어요 복도를 비워 두세요 다가오는 마지막 걸음이 느껴지나요 저마다의 질문들이 붙어 길고 긴 리본을 만들었어요 어쩌면 기도였겠지만 각운을 맞추지 못한 약속은 어차피 지켜지지 않으니까 무시해도 괜찮아요 기억할 것은 단 하나에요 다시 돌아오는 것들은 완전히 다른 밤이거나 각자 내밀고 싶었던 단어의 찌꺼기에요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복도는 아주 길고 우리가 열 수 있는 상자는 많이 남았거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