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사랑아

35. 병준

by 김정욱

방으로 돌아온 민준은 살짝 어두어진 사랑의 얼굴이 떠올랐다. 녀석이 좋아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작자일까? 순수한 사랑의 맘을 콱 틀어쥐고 있는 녀석이라니 - - 웬일인지 좋은 사람이 아닐 꺼라는 편견부터 생긴다. 차라리 병진이가 더 나은데 - - 자꾸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다.

누가 뭐래도 사랑이가 정할 일이다. 언제라도 사랑이가 도움을 청하면 모르지만 섣불리 나서서는 안 되는 일이다.

청명한 날이다.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며 민준은 병진을 생각했다. 같이 등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이 좋은날에 늙은이하고 등산 할 시간이 있을라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실망하며 민준은 집을 나섰다. 11월초. 언제부터인지 매년 11월이 되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일 년이 조용히 저물며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스산한 바람이 불고 낙엽이 휘날리면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몸 안에 차올랐던 쓸쓸함 외로움이 이젠 찬바람에 섞여 몸 밖으로 남모르게 흐르곤 했다. 차라리 모두가 움츠리고 발걸음을 종종거리는 겨울이 되면 맘이 편했다. 어쩐지 숙명처럼 끌어안고 사는 고독감이 견딜만해졌다.

“아저씨. 저 병진예요”

“아. 그래. 오랜만이구나”

“잘 지내시죠?”

“시간이 남아도는구나. 맘 같아선 뚝 잘라서 남들에게 줘버리고 싶다”

“하하하. 아저씨도. 참 - - 심심하신가 봐요?”

“사랑이도 안 놀아주고. 혼자 노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잘 안 가”

“목공이나, 아니면 악기나 아니면 그림이나 - - 시간이 많이 드는 거 그런 걸 시작해보세요”

“안 그래도 내년에는 어디 기술학교라도 가 볼까 생각하고 있다”

“참, 아저씨. 사랑이랑 다시 만나는 거 아세요?”

“잘 됐구나”

“근데 잘 안 될 거 같애요. 사랑이 영 맘을 주지 않아요”

“그래도 잘 해 보려무나. 니 맘이 그러면 언젠가 사랑이도 니 맘을 알지 않겠니?”

“그렇겠죠? 역시 아저씨랑 얘기 하니까 좀 맘이 놓이네. 잘 해 보려구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요”

“그래. 내 응원하마”

전화를 끊자 민준은 정말 병진을 응원하는 맘이 생겼다. 아직 젊고 앞날이 푸르고 창창한 병진이다.

사랑이 이 녀석은 어디다 한 눈 팔고 있담.

병진의 전화를 받고도 며칠이나 지났는데 병진도 사랑이도 아무 말이 없다. 얘기가 잘 됐으면 잘 됐다고 말이라도 해 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나? 두 사람 모두 입을 꾹 다물고만 있으니 민준이 오히려 안절부절. 공연히 사랑의 눈치만 살피게 된다.

“아저씨. 주무시는데 전화한 거 아닌가요?”

“흠 - 좀 늦기는 했지만 아직 자지는 않네. 근데 어떻게 돼가나?”

“사랑이한테 그랬죠. 내가 니 연애를 도와줄테니. 다 말하라고. 진짜 좋은 사람이고 니가 행복해진다면 내가 도와주겠다고”

“아니. 이 사람아. 자네 얘길 해야지”

“제 얘기야 사랑이가 다 알고 있고. 새삼 처음 보는 사람도 아니고. 저는 사랑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궁금했어요. 진심으로 사랑이가 좋다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흠. 자네 이미 맘을 접은 건가?”

“그런거는 절대 아니구요. 꼭 내가 아니더라도 사랑이가 이상한 사람 만나는 거면 용납이 안돼요.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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