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사랑아

42. 고백

by 김정욱

민준은 ‘그 놈이 누구냐?’ 터져 나오는 말을 삼켜야 했다. 섣불리 나섰다간 사랑이가 영영 입을 다물지 몰랐다.

“그래도 아니라고 아니라고 - - 저를 다독였죠. 다른 사람과 사귀기도 했고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려고 노력도 했죠. 근데 그건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었어요. 웬일인지 좋은 사람인데도 좋아지질 않는거예요. 분명 상대가 날 정말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데도 내 마음이 열리질 않는거예요. 결국 그 사람에게 말해야 했죠. 내 맘엔 다른 사람이 있다고 - - 그 사람이 마음을 다치고 상처를 받고 나 땜에 다른 사랑을 놓칠까봐 정말 맘이 아팠어요. 힘 들었어요. 차라리 날 욕하고 비난하라고 했죠. 나쁜 여자 컨셉인가? 아무튼 그래도 떠나지 못한 사람도 있어요. 병진이가 그렇고 - - 제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스스로 용서하지 못할 지경이예요. 웃음이 좋은 사람, 눈 빛이 선한 사람,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일도 생겼죠. 트라우마인가? 내가 자만에 빠진 건가? 대인 기피증도 생기고. 아저씨도 아실꺼예요. 직장생활에 대인기피증이라니 가당키나 해요?”

사랑은 한 숨을 내쉬며 맥주를 들이켰다. 한동안 말없이 슬픈 얼굴이 되었다. 눈 밑에 그늘이 진해져 있었다. 사랑이가 아직 끝이라고 안했으니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속이 타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민준은 바짝바짝 입이 말랐다.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달려 나갔다.

“여기 아이스 콜라. 대 자 큰 걸로 주시요”

사랑은 묵묵히 탁자만 바라보고 있다. 하긴 뚫어져라 민준이 저를 보고 있으니 그렇기도 하지만 저만의 수심에 잠긴 모습이다.

‘그래.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털어낼 수 있어서 - -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가는 일이다’

“근데 말이죠. 문제가 있어요. 난 아직 한 번도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 -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이 없어요. 웬지 자신이 없달까 - - 무서운 맘도 들고.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사람들도 같은 맘이었을까요? 상대가 나와 같은 맘이 아니라도 내 맘은 이렇다고 말하는 게 당연한 일일까요? 만약에 아니라고 내 맘이 너와 같지 않다고 하면 난 어떻게 될까요? 떠나야 할까요? 아님 내 맘이 정리될 때까지 주변을 맴돌아야 할까요? 그 사람 맘이 바뀌길 - - 그래서 알고 보니 나도 널 사랑한 게 맞다고 그래주길 기다려야 할까요? 그 사람 맘이 바뀔까요? 난 말이죠. 친구처럼 아군처럼 니가 언제든 볼 수 있는 곳에 있겠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죠. 가라고, 떠나라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지라고. 그게 맞는 거죠? 쓸데없는 희망은 독이잖아요. 잔인한 일이구요. 근데 - - 그 사람은 나에게 무어라 할까요? 자신이 없어요. 두려워요”

또 말이 없다. 민준은 기다린다. 민준은 지금 뜨거운 맘을 가진 청춘을 본다. 어지럽던 생각을 하던 민준도 차츰 사랑이 가여워진다.

‘그까짓 사랑, 그냥 해버려 - - 인생? 길지 않아. 어짜피 후회할 인생이라면 저질러 버려 - - 한번이라도 진짜로 살아보는 것도 좋아’

순간 민준은 덜컹 맘이 내려앉았다. 사랑은 내 딸이다. 절대, 절대로 사랑은 불행해지면 안 된다.

가시밭길 사랑이라면 막아야 한다. 지금은 뜨거운 불에 타 죽을 것 같아도 지나가면 견딜만해 질것이다.

사랑을 완성한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면 이 세상 사람들 반도 넘게 죽었을 것이다. 살다보면 사랑 보단 의지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만난다. 뜨거움이 아니더라도 따뜻함 부드러움 평화로운 일상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랑을 대체할 만한 것일까?

“사실 - - 지금 몹시 힘들어요. 점점 차오르는 물이 코 밑까지 찰랑대는 기분이랄까. 역시 고백을 해야겠죠? 왜냐하면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으니 - - 결과가 어떻든 말을 해야겠어요. 그게 맞겠죠?”

간절한 눈빛으로 사랑이가 민준을 바라본다. 얘기가 다 끝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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