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꽃순이 시대

by 김정

나는 출퇴근을 꽃순이라는 경차를 이용한다. 어제 우리 꽃순이의 생애 첫 사고 수난이 있었다. 꽃순이 주인인 나도 엄청나게 놀랐다. 나는 운전 솜씨가 좋지 않아 늘 천천히 신호 잘 지키면서 다니고 있는 아줌마 운전자이다. 어제 퇴근 무렵 주차 차단기를 지나다가 앞 범퍼 밑을 기둥에 콕 찍는 일이 생겼다. 기둥은 멀쩡한데 꽃순이만 영광의 상처가 생겼다. 좀처럼 지하 주차장 이용은 안 하고 있었는데, 어제는 너무 더운 날이어서 지하에 자동차 주차를 하였다. 차단기를 통과하는 중에 살짝 뒤로 후진을 하였다가 앞으로 쭉 나가는데, 기둥에 쿵~하고 부딪쳤다. 속상한 마음에 괜히 지하 주차장에는 왜 들어갔는지, 기둥을 왜 못 보았는지 이탓저탓을 해 본다. 쩨쩨하게.


꽃순이가 기둥에 '쾅' 하는 순간 내 배 속 장기 하나가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아마 심장이었을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어디로 나갈 줄 몰라서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둥 쪽으로 차가 혼자 가고 있었다. 일단 차를 멈추고 내렸다. 지하 주차장 주위를 둘러보니 퇴근 시간 5분 전이라서 아무도 없었다. 혼자 길을 가다가 넘어진 것처럼 나 혼자 뻘쭘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를 타고 뒤에 넓은 자리로 후진 후 지상으로 나왔다. 놀란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을 더해 혹시 시설팀에서 뭐라고 할까! 돈으로 물어내라 할까! 겁나는 마음을 더하여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이 뒤엉켜 있었다.


평소 친한 직원에게 전화했다.

정신없이 횡설수설했더니,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빨리 도망가세요.”라면서 별일 아니니 마음 편히 먹으라고 했다. 천천히 운전 잘하고 집에 가시고, 내일 출근하여 조용히 알아봐 준다고 했다. 큰일 아닌 것 같은데 너무 놀란 것 같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거듭 안심 서리게 말했다. 내 걱정이 전화기 너머로 계속 전달 되고 있었나 보다.


불편한 마음 가득히 집으로 왔다. 차를 자세히 보면서 남편은 콕콕 찍힌 꽃순이의 범퍼 아래 사고 자국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나는 자세히 봐도 잘 안 보이던데. 그만큼 놀라서 내 눈에는 안 보인 것 같다. 쉰 살도 넘은 아줌마가 차 조금 긁혔다고 울 수도 없고, 사고를 낸 기억을 지울 수도 없고 이참 저 참 속이 상했다. 남편은 차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별일 없을 거고, 혹시 시설팀에서 연락해 오면 보험 처리한다고 하면 돼지?

나는 자동차 보험 서비스를 받을 생각도 못 하고 혼자 나쁜 상상만 하고 있었다.

”보험 처리한다고?“

순간 나는 이 쉬운 문제 해결법을 생각 못 한 것도 또 부끄러웠다.

나는 왜 이리 바보처럼 자기 객관화를 못 하고 있는지,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지, 얼굴이 뜨거웠다.


술 한잔으로 상한 마음을 달래면서 객관화할 수 있는 생각 대화를 남편과 나눴다.

다른 사람이 이 정도 자동차 사고를 냈다면? 하는 물음에 많은 좋은 답이 나왔다.

“보험을 왜 들겠어? 걱정하지 마”라고 위로해 주기

“작은 사고 경험 쌓고 베테랑 드라이버 되기라고 말해주기”

“자꾸 생각하지 말고 훌훌 털어버리기.”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편안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데 스스로에게는 왜 인색할까?

자꾸 생각을 키워서 이유를 생각하기보다 지금의 현실을 결과로 여겨 “그렇구나, 고생했다.”라고 나에게 말해주어야지. 한편으로는 나 혼자 사고 나서 다행이지 뭐,

옆 차를 긁었으면 더 큰 일, 사고 차량이 외제차이거나 영업용차이거나 사람이 타고 있었다거나 했었더라면 완전 큰일이었을 뻔했다.

이만하면 럭키 비기 한 날이었다.

“꽃순아! 너 어제 많이 놀랐지? 나도 많이 놀랐어.”

때마침 내일은 비 소식이 있다.

꽃순이에게 비누칠을 해 주어야겠다.

빗속에 자동 세차되면서 사고 기억도 함께 씻겨나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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