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다리 너머

함께 지내던 강아지와의 이별은

by 큐인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은 어깨 너머로도 슬퍼서.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이었다. 내가 다니던 직장은 오로지 미용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애견 유치원 안에 애견 미용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유치원 안에는 작은 생명들이 해맑게 뛰어다녔고, 애교도 참 많은 아이들이었다. 원칙상, 10kg 이상은 유치원생으로 받을 수 없는 유치원이었기 때문에 한 손으로도 번쩍 들 수 있는 아이들이 한가득인 곳에서, 유독 낯가림이 심한 아이가 있었다.


정말이지, 예쁘게도 생겨서 유일하게 경계를 푼 원장님한테만 애교를 부릴 줄 아는 아이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찬밥 신세였다는 소리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그게 사람이 아니라 동물일 경우에는 섣불리 다가갔다간 성큼 옮긴 한 걸음이 열 걸음으로 멀어져 버렸으니 조심스러웠다. 한 공간에서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며 친밀감을 차츰 쌓아갈 때쯤이었다.


그 아이의 보호자께서 사실 집에 다른 아이가 한 마리 더 있는데, 나이가 지긋이 든 노견이라 하며 원장님께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집안에 문제가 생겨 집을 며칠간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런데 아이는 너무 노견이라 데리고 갈 수도, 그렇다고 집에 둘 수도 없는 상황이라 유치원에 맡겨보려는 것 같았다. 유치원은 이미 애견 호텔까지 운영하고 있어서 큰 문제 없어 보였지만, 너무 노견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많이 아픈 아이인데, 지금 호텔에 맡겨도 되는지 고민이신 것 같았다. 보호자 분의 집안 사정이 어떤지 당연히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음으로 미루지 못할 상황이라는 것만 이해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결국은 결정하셨는지, 다음 날 퇴근 시간에 그 보호자 분과 노화가 오래 진행된 아이가 함께 들어 왔다. 보호자 분께서는 아이들 말고도 쇼핑백 하나를 들고 계셨는데, 그 적당한 크기의 쇼핑백 안에는 아이가 꼭 복용해야 하는 약과 지급 시간이 적힌 비닐에 각각 분배된 사료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것만 보고도 느낄 수 있었다. '아, 많이 아픈 아이구나.'라고. 이런저런 설명을 마친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으신지 연신 이동 가방 속 아이의 얼굴을 살피며 인사하시고는 떠나셨다. 나는 퇴근할 시간이 지났지만, 집으로 가지 않고 노견의 아이와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어떻게 냉정하게 바로 퇴근할 수 있겠는가. 분명히 초롱초롱했을 두 눈은 노화로 인한 백내장 때문에 시력을 잃은 상태였고, 다리에 힘이 없어 오래 걷지 못하는 아이를 두고 말이다.


눈으로 보지 못하니 귀로 듣는 모양이었다. 놀라지 않게 이름을 살짝 불러주거나, 박수 소리를 내어 강아지를 부르고 냄새를 맡게끔 했다. 말고도 새로운 곳이니만큼 탐색 시간이 필요한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이리저리 잘 돌아다녔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낯가림이 심한 다른 아이한테도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그 아이의 몸에 대고 코를 씰룩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한집에서 살고 있던 사이라서 낯가림이 심하고 예민하던 아이가 그 아이한테는 꼼짝하지 않고,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신기하고도 기특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에는 원장님을 제외한 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강아지들조차 얼씬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적응하는 모습과 두 아이 전부 푹신한 이불 위로 올라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 퇴근했다.


퇴근하고 나서도 이상하게 눈에 밟히던 아이는 출근하기 전까지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평소보다도 빠르게 출근했다. 그런데 나를 맞이해 주는 원장님의 표정에서 근심이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여쭤보니, 새벽에만 괜찮고 아까부터 밥을 전혀 안 먹는다고 하셨다. 근심이 두 배로 늘었다. 원장님과 나는 아이가 어떻게 해야 밥을 먹을지 머리를 맞대어 고민했고, 전자레인지에 조금 데워도 줘 보고, 다른 아이들이 밥 먹는 시간에 슬쩍 밥을 다시 넣어주기도 해 봤다. 그 결과 다른 아이들 밥 먹는 소리에 같이 먹는 것 같아서 그날은 다행이라며 넘겼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는 밥에 입을 대지 않았다. 물을 계속해서 주고 조금이라도 더 먹여보려고 했던 원장님과 나는 걱정만 쌓여갔다. 밥을 먹지 않았던 첫째 날부터 보호자 분께 다 보고했던 원장님은 다시 한번 보호자 분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고, 난 그 와중에도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 더 먹이려 애썼다.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모든 걸 등지고 잠만 잤다.




약을 먹이려면 밥을 안 먹일 수가 없어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약을 먹이면 얌전히 받아먹는 것 같아도, 토를 하거나 그 이후에 또다시 잠에 빠져 다른 것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원장님께서는 밥을 먹자고 달래는 보호자 분의 녹음 파일까지 받아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병원에 데려가서 들은 말은 아무래도 노견인 상태로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 묵게 되어서, 곁에 가족이 없으니 살 의지가 떨어진 것 같다는 말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어렴풋이 느껴지긴 했으나, 속으로 짐작하는 것과 의사의 입에서 말로 듣는 건 전혀 달랐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내가 하루 종일 그 아이 옆에 있는다고 달라질 건 없었고, 나보다 더 전문가이신 원장님께서 새벽 내내 옆에 계셨으니. 나는 퇴근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밥을 마다하고 온종일 누워만 있는 아이가 눈에 밟혀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퇴근 후 집에서도 원장님께 연락을 보내볼지 말지 고민하다 잠에 들었고, 날이 밝으면 빠르게 출근했다. 그날도 그렇게 빠르게 출근했던 날이었다. 출근했는데, 아이가 보이질 않았다. 원장님을 바라보니 내가 뭘 찾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들어보니, 보호자 분께서도 너무 걱정된 나머지 예정된 퇴실 날짜보다 며칠은 일찍 오셔서 아이를 데려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쇠약한 상태의 아이를 보고 원장님과 함께 바로 병원으로 다시 데려갔고. 아이는 보호자 분을 마지막으로 보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지만 바로 어제까지 옆에서 밥을 권유했었다. 원장님께 듣기로는 보호자 분께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그렇게 슬픈 와중에도 원장님께 나까지 언급하시며, 선생님들도 힘들었을 텐데 돌봐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고. 잘 모르겠다. 내가 힘이 들었을까? 굳이 힘들었던 걸 따지면 새벽 내내 옆에 계셨던 원장님과 아이를 보낸 슬픔을 고스란히 느낄 보호자 분이 아닐까?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당황한 원장님이 휴지를 가져다주셨다.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날은 정말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한 것 같다. 정말 착하고 온순한 아이였는데,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 너머에서는 안 아프고 평안할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더 잘 보살펴 주지 못한 마음이 아프게 남았다. 나도 이 정도인데 보호자 분은 어떤 심정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역시나 며칠 동안 낯가림이 심한 아이도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쉰다고 들었는데, 집에서 그 아이를 눈에 담고 같이 슬퍼할 보호자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오래 산 강아지라면 틀림없이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이었을 텐데. 가족을 잃은 슬픔은 어깨 너머로도 슬퍼서, 비에 젖은 것처럼 가라앉는 날이었다.


많은 반려견이 행복하게 생을 보내다 너무 아프지 않게 떠났으면 한다. 많은 반려인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당신의 강아지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당신을 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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