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를 읽고
윌리엄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는 자전적 소설로 스피노자의 '에티카'의 다음 글에서 착안하여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감정을 지배하고 제어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를 나는 '속박된 상태'라고 부른다. 감정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이른바 운명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눈앞에 선을 보면서도 악을 쫓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굴레'를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이나 애정결핍이 될 수 있고, 어떤 이는 사회가 들이대는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런 자신의 굴레 속에서 소중한 삶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인간의 굴레는 그런 삶의 조건들, 그 안에서 갈등하고 성장하고 무너지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필립, 감정의 굴레에 속박된 상테 (수동적 감정)
주인공 필립은 어릴 적 일찍 양부모를 잃고, 다리를 저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인물이다. 그 결함이 만들어낸 내면의 열등감과 애정결핍은 위축된 대인관계를 만들었다. 필립은 그 결핍을 채워줄 만한 사랑의 대상이 필요했다.
그로 인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의 굴레에 필립의 삶은 지배당하게 된다.
그가 집착한 대상은 그림 공부를 하며 다니던 카페 종업원 '밀드레드'이다.
그녀는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필립을 이용만 하고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를 포기하지 못하고,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속박당한다.
그의 이성은 말렸지만, 감정은 필립을 끝도 없이 자신을 이용만 하는 그녀에게로 이끌리게 된다.
필립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에 의해 지배당하게 된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런 상태를 '감정의 노예'라고 했다.
“감정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은 그것의 노예다.”
자신의 굴레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유롭지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물이 바로 필립이다.
반대로 크론 쇼를 살펴보자.
▶크론쇼, 자신의 굴레를 품고 사는 시인(능동적 감정)
크론 쇼는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이다.
그는 가난하고,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말년에는 병들고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술을 마시며,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의 방식대로 살았다.
죽음을 앞둔 크론 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복했어.”
그 말은 삶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아간 자유로운 인간이다.
자신의 굴레를 벗어 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 굴레를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의 굴레에 대하여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나 자신의 굴레를 돌아보게 되었다.
필립에게는 장애가, 크론 쇼에게는 가난과 병이 있었듯이
나에겐 '가정환경'이 굴레였다.
술집 딸이라는 어릴 적 가정환경에서 자란 기억은
꿈을 펼쳐야 할 시기에 나의 사고방식과 선택을 제약해왔다.
“나는 결혼하기 힘들 거야.”
“나는 부끄러운 집안의 사람이야.”라는 사회적 신분의 낮음이라는 굴레에서
오랜 시간 나를 묶어왔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해 주는 남편을 만나고, 결혼 후 10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면서 그 굴레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를 둘러싼 굴레가 사실은 나 스스로 만들어낸 잘못된 신념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랜 시간 굴레속에 있던 내가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책 속의 공감되는 문장들 덕분이었다.
▶샐리, 있는 그대로 필립을 받아들이다 ‘능동적 감정’
필립은 밀드레드와의 관계에서 감정의 노예 상태에 있었다면.
애설니의 딸 샐리와의 관계는 전혀 다르다.
그는 더 이상 사랑에 속박당하지 않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애셜리네 가족을 만나면서 배우게 된다.
샐리는 필립에게 무조건적 헌신을 보이던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필립의 신체적 장애도, 사회적 신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필립 역시 그녀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구원하거나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능동적 감정’,
즉, 이성적으로 감정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상태이다.
▶애설니부부, 이웃을 바라보는 따뜻한 사회적 시선
애설니 부부는 필립에게 조용히 마음의 문을 열어준 이웃이었다.
그들은 필립을 판단하지 않았고, 불쌍하다고 측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였다.
그들의 따뜻한 시선과 일상의 배려는, 오히려 필립이 자기 굴레를 들여다보고,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눈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들의 태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이웃의 자세를 본다.
필립처럼 신체적 굴레에 갇힌 사람,
크론 쇼처럼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이들을 향해 우리가 던져야 할 시선은, 판단도 연민도 아닌, 이해와 수용, 그리고 거리감 없는 존중이다.
애설니 부부는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준다.
굴레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을 억지로 끌어내려는 시선이 아니라,
그 곁에 조용히 받아줄 누군가의 마음이라는 것을.
▶굴레에서 나아가는 법, '자기 이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흔들리고, 묶이고, 멈춰 서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굴레에 짓눌려 사느냐,
아니면 그것을 품고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느냐다.
필립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기 속박에서 살았다면,
크론 쇼는 굴레를 안고도 당당히 걸어 나와 자기 해방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며 조금씩 나만의 굴레에서 걸어 나오는 중이다.
책 한 권이, 문장 하나가, 대화 한 줄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굴레의 무게를 덜어줄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누군가의 굴레도, 나처럼 조금 가벼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