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상실의 시대(노르웨이숲)를 읽고 ㅡ
소싯적 '상실'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긴 했으나 노골적인 성에 대한 묘사로 문학을 읽는다는 자부심보다는 왠지 연애소설을 읽는 것 같은 눈치가 보여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청춘의 나이에 맞게 두근거리며 읽었던 책 중 하나이다. 30년 전 나는 '상실'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처럼 가슴 한복판이 뻥뚤린 상처로 방황과 번민이 많았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 상실감의 이유는 잘 모르겠다. 대학에 떨어져서였을까? 아님 첫사랑에 실패해서였을까? 그때는 나를 위한 연민과 동정으로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면, 이번엔 상실감으로 힘들어하는 타자의 이해와 치유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때로 느끼는 상실감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책 속 주인공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기즈키>의 자살로 인해 잊을 수 없는 공통의 상실감을 갖고 있다.
기즈키의 죽음 이후 오랜만에 재회한 둘은 상실감에 대처하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ㅡ나오코는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며 얘기하고는 결국 삶을 포기하는 '자살'로 상처를 달래고
ㅡ와타나베는 기즈키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삶 속에 언제나 죽음이 공존했음을 깨닫게 되고, 그동안 멀리했던 당구를 다시 치며 상처를 회복하게 된다.
또 다른 '상실'을 갖고 있는 3명 여자가 있다.
ㅡ와타나베의 여자 친구 미도리와
ㅡ나오코의 요양원 친구 레이코와
ㅡ선배 나가사와의 연인 하쓰미이다.
ㅡ 하쓰미는 <나가사와>의 사랑에 실패한 상실을 자기 동정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하고 얼마 안 있어 '죽음'을 선택하는 하쓰미는 상실의 치유를 극단적인 방법으로 선택해서 지인들은 안타까워한다.
나가사와 선배가 한 말 '자기 동정에 빠지지 말라'~ 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ㅡ미도리의 '상실'해결법은
암투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현재 투병 중인 아버지의 병간호를 언니와 함께 했지만 결국 아버지도 죽고 만다. 언니까지 시집을 가고, 상실감은 더욱 커져온다. 혼자서 아버지의 서점을 지키는 암울한 현실에서도 미도리의 선택은 '삶'이었다.
ㅡ레이코 역시 장래가 촉망받는 피아노 신동이었으나 꿈은 실패로 이어지고 말았다. 현재 요양원에서 일손을 도우며 살고 있지만,
죽음으로 삶을 마감한 나오코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레이코는 7년 동안 자신의 상처를 안고 있던 요양원을 벗어나 와타나베를 만나러 '세상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상실에 대한 네 여자의 대처방법에서 우린 상실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미도리와 레이코가 삶을 선택했다면 나오코와 하쓰미는 죽음을 선택했다.
과연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할게 될까?
당당하게 맞서기 &와 회피하고 숨기?
와타나베는 4명의 여인들에게 상실에 대한 치유방법과 태도를 배우게 된다.
ㅡ기즈키의 죽음에선
'우리의 삶 속엔 언제나 죽음이 늘 공존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포기보다는 '더 강해지자'는 스스로의 다짐을 하면서 미도리와의 사랑을 시작한다.
큰 트라우마(상실)를 겪은 사람은 끝없이 지속되는 상실감으로 우리의 관심 또한 그들에게 지속될 필요가 있다. 상실감은 언제 나타나 자신을 파먹는 악마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상실의 치유법으로 여인들과 온몸으로 사랑을 나눈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와 사랑을 나눌 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그대화가 바로 상실을 치료하는 <치유과정>이 된다. 이게 내가 이번에 읽으면서 알게 된 부분이다.
'섹스'라는 단어가 욕망의 표현이 아니라 말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는 신체 감각 기관이 된다. 사랑나누기는 상처의 치유법이었다.
촉감은 사랑하는 사람만의 위로법이다.
아무나 위로한다고 만질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따뜻한 체온으로 상처를 다독일 수 있는 것이다.
몸으로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 상대의 상실감도 조금씩 치유가 되고, 더불어 자신도 치유하게 된다.
우리의 감각 중 촉감은 가장 예민하고 어려운 것이나 사랑한 사람의 촉감을 나눈다는 것은 곧 치유이고 행복이다. 그래서 와타나베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들의 상처를 '섹스'로 다독여 준 것이다.
나오코는 기츠키를 사랑했기에 와타나베와의 관계에서는 한 번의 치료는 되었으나 계속되는 상실을
치유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때때로 삶 속에 크고 작은 상실감을 경험하며 살게 된다.
상실감은 때때로 우울증으로 변질되고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자살 1위'라는 불명예가 20년을 지속해오고 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나 '자살'이라는 결과는 우리의 삶에 메울 수 없는 큰 구멍들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책 표지에서도 가슴 한쪽에 빨갛게 뻥~ 뚫려 있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그 상실감을 이겨내고 있는지,
또 곁에 있는 내 가족,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고민스러워질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상실의 시대'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와타나베식 '섹스'를 나는 '사랑 나누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섹스는 욕망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상실을 치유하는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늘은 우리 가족에게 사랑의 허그라도 해줘야겠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다양한 노래의 소개이다.
7년 동안 재즈바를 운영하다 전업작가의 길로 운명을 바꾼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성실한 생활 습관은 젊은 시절부터 70이 넘은 지금까지 작가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최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은 하루키의 젊은 시절 발표한 짧은 장편의 이야기에서 내용이 보충되어 장편으로 2번 개작된 것이라고 한다.
작가로서의 성실한 면모가 느껴진다.
특히 이 책에서 빌리조엘의 honesty 노래 가사 중
'honesty is such a lonely word'
ㅡ진실함은 참 외로운 단어ㅡ이라 했다.
다정한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진실은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말로는 쉬우나 진실로 위로하기는 참 어렵기 때문에~
오늘은 빌리조엘의 노래로 각자의 상실감을 위로하며
독후를 마친다.
<책 속의 한 줄 문장 기억하기>
오늘은 선배 '나가사와'의 글 중
신사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진실한 언어로 사랑의 치유자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제목 <노르웨이 숲>보다 < 상실의 시대>가 이 책의 주제를 더 또렷하게 비춰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