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이야기(1)

낮에 만나는 사람들

by 안녕제이

편의점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오가는 특별한 공간이다.

남녀노소, 경제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올 수 있는 곳.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놀다가 들른 편의점에

야간 알바생 (밤 11시~아침 9시)을 구한다는 광고를 봤다.

이미 재수를 해서 더 이상 집에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안에 들어가서 점장과 이야기를 하였고, 전화번호를 남기고 집에 왔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고, 낮과 밤이 바뀌는, 쉽지 않은 알바를

나는 겁도 없이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편의점의 아침에는, 하루를 여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가장 손님이 없는 새벽 3~6시의 시간이 지나면,

'띵동'이라는 손님이 오셨다는 소리와 함께,

바쁘게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다.


1.

40대로 보이는 직장인, 그는 다른 사람보다 일찍 나오는 편이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손님 중 한 명이다.

그가 매일 구매하는 작은 사이즈 신라면과 달걀 한 개.

아마 그의 아침 식사일 듯하다.

그는 한쪽 테이블에서, 라면을 열고, 달걀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린다.

마치 매일 아침 행해지는 그만의 신성한 의식 같았다.

조용히 다 먹으면, 그는 그의 흔적을 정리하고 편의점을 나가곤 하였다.


나는 그 맛이 궁금했었다.

나중에 똑같이 만들어 먹어봤지만, 그냥 예상되는 맛이었다.

삼각김밥이나, 다른 것을 먹을 수 있었겠지만,

그는 평일 아침 출근 전.. 매일 같이 똑같은 것을 먹었다.

그리고 그날의 하루를 시작한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아이들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부인을 위해

아침 일찍 먼저 나와 라면과 달걀로 아침을 먹고,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출근한 그의 모습은 힘든 가장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냥 혼자 사는 싱글 노총각이던가,

와이프가 매일 늦잠을 자서, 아침을 포기하고 매일 편의점에서 해결하는

쓸쓸한 가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든다.


2.

30대로 보이는 직장인은

매일 아침 담배를 사러 온다.

이미 그의 손에는 천 원짜리 한 장이 준비되어 있고,

그런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나는 조용히 담배'디스'를 꺼내서 그에게 건네어준다.

그런 디스의 가격이 천백 원으로 올랐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는 조용히 탄성을 내쉬었다.

"아.. 담뱃값이 올랐지요. 끊던가 다른 걸로 바꿔야 하나 ㅎㅎ"


아마 단돈 천 원으로 구매하는 디스는,

회사 업무 중 그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낙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 회사에서 먹을 수 있는 커피 믹스와 피는 디스의 맛.


그런 그에게 굳이 동전 한 개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

동전이 없어 2천 원을 내고 남은 동전을 무겁게 주머니에 넣고 가는 게 싫었을 수 있고

아니면 인상된 백 원이 그에게는 부담으로 왔을 수도 있고,

앞으로 쉬지 않고 인상될 담뱃값을 이때 이미 느끼기 시작한 것 있을 수도 있다…

그다음부터 그는 매번 천백 원을 준비해서 나에게 전달하였다.


이렇게 편의점의 아침은 밝고 활기차다.


어두운 밤시간이 지나고 햇살이 들어오고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정말 필요한 것들만 사서 빨리 움직인다.

그들에게서는 아직 전날의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피로감도 느껴지고,

늦어서 빨리 가야 한다는 그런 급한 마음도 느껴진다.


그러한 바쁘고 정신없는 아침 시간이 지나면,

편의점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손님의 종류는 단골보다는 일회성 손님이 많아진다.


이 건물에 약속이 있어 잠시 시간 때우러 오는 손님이나

근처 공사장의 막내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간식으로 빵과 우유를 사러 왔는데,

빵이 충분하지 않던가 먹고 싶었던 빵이 없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잠깐 차를 새우고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

근처 식당에서 점심 먹고 캔커피나 담배를 사러 오는 손님이 대부분 이였다.

이때는 알바생으로써 재미가 좀 없다.


하지만 이런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의 학교시간이 끝나면서 또다시 바쁜 시간이 찾아온다.


편의점에는 컵으로 직접 따라먹을 수 있는 음료수와 슬래쉬 같은 얼음 음료.

컵라면, 냉동 음식등 많은 것이 있다.

그리고 당시 우리 가게는 라면 먹는 자리가,

내가 있던 계산 카운터에서 잘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생기곤 하였다.


3.

아이들에게 몇 안 되는 일탈이나 새로운 경험 중의 하나는

방과 후 편의점 한쪽에서 친구들과 컵라면을 먹는 것.

그러며 음료수를 나눠 마시고,

어떨 때는 여러 가지 맛을 섞어서 먹어보기도 하는 등.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별거 아닌 이런 것들이 그들에게는 신기하고 재밌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새로운 것을 보면 해보고 싶고 관심이 있다.

그만큼 거리낌이 없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자주 오는 고학년의 초등학생들은,

이미 내가 편하다.

가끔 내가 편의점에서 봉지 라면과 다른 음식으로

새로운 음식을 조합해서 만들어 먹으면

엄청 궁금해하고 어떻게 만들어 먹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똑같이 따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사고가 발생한다.

여기저기 음식이 떨어지고, 흘리고 하면,

그 녀석들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하고

본인들이 정리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결국 정리를 내가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그나마 나와의 친분이 있어

잘못을 사과하고 미안해하는 착한 녀석들이다.


친하지 않은 어린이들,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책임감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

(물론 어른이라고 다 책임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컵라면을 먹다가 쏟거나 음료수가 쏟아지면,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혀 고민을 하다가

조용히, 급하게 도망가 버린다.

도망가 버리고 다시 안 오면, 더 고민할 상황이 생기지 않고,

그들의 문제는 해결이 된다.


어떤 친구들은, 남은 음식물을 버리지 않고,

통째로 쓰레기통에 넣기도 한다.

차라리 문제가 생겨서 얘기를 하면,

나중에 손이 덜 가게 내가 치워줄 텐데,

이렇게 은근슬쩍 버리고 가면 나중에 더 손이 많이 간다.

그래서 어린 학생 손님은 사실 신경도 많이 쓰이고

손도 많이 가는 편이다.


그래도 아침과 낮시간은 밤의 편의점에 비해 좀 더 평화적이고 이성적이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보며 경험할 수 있는 시간들이다.


그들의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패턴을 볼 수 있고,

그들이 의도하든 안 하든

이미 나는 그들의 일상과 습관을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 되어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사람들의 숨겨진 본성과 그들의 실제 모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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