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의 사랑과 결혼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많은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러시아 낭만주의의 대 작곡가,차이콥스키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젊은 날의 오자와 세이지를 볼 수 있는, 제가 좋아하는 연주 중 하나예요!
도입부 부분은 굉장히 화려하면서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름답지요!
이토록이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천재 작곡가의 삶이
음악만큼이나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차이콥스키가 태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80여 년 전, 19세기의 러시아.
당시의 러시아는 정교회가 사상을 지배하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2023년 현재는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더라도 사랑의 한 가지 형태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당시의 러시아의 사회규범에서 '동성애'라는 것은, 발각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모든 것을 잃고 시베리아로 유형이 보내지거나 혹은 최악의 경우, 사형에까지 이르게 되는 그야말로 "중죄" 였답니다.
그리고 대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안타깝게도 이런 시대에 태어나 세상으로부터 허락받지 못한 사랑을 주로(!) 했던 사람이었죠.
남자인 차이콥스키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남자였는데, 그것도 주로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남자들...
예를 들면 본인이 가르치던 제자라든가.. (그것도 무려 남친(!)이 있는 남자 제자!!! )
심지어는 친조카라든가... (쩝..)
(실제로 차이콥스키는 유언장을 통해 끔찍이 사랑했던 사진 속의 이 조카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과 이권을 넘깁니다. 조카는 차이콥스키 사후에 기념관 사업을 하는 등 차이콥스키의 업적을 기리는 활동을 하지요. )
동성인 이 둘의 나이차는 무려... 30세...!!!
오늘날 우리가 30세 나이차가 나는 '이성'을 사랑해도 도둑놈 소리 듣기 십상일 텐데, 19세기 러시아에서 30세나 나이가 어린 친조카를 연애의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건, 사회적으로 떳떳하다거나 축복받을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겠죠. 그러나, 44세의 차이콥스키의 일기에는 온통 밥(조카의 애칭)이라는 글자로 가득합니다.
1884년 5월 1일
사랑하는 밥과 피아노 연탄. 행복하다.
밥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나에게 이상적인 남자이다.
함께 연주를 할 때, 밥도 나에게 미소를 보였다.
1884년 5월 22일
일할 때, 산책할 때를 빼고는 모든 순간 밥을 만나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다.
밥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절대 안 된다. 외로워서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다니. 어쩌면 좋을까.
정말 어쩌면 좋을까. 나는 스스로가 두렵다.
-1884년 차이콥스키의 일기 중
이토록 절절하고도 괴로운 사랑의 일기가 쓰인 것이 1884년이니 차이콥스키 방년(?!) 44세, 조카이자 제자인 다비도프가 14세! (혹시라도 우리 아이의 레슨을 맡긴 피아노 선생님의 수첩에서 이런 일기가 발각된다고 생각하면... 오우, 엄마들은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일이겠어요)
그러나 이것이 세상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감정임을 잘 알고 있는 건, 다른 누구보다도 바로 차이콥스키 자신이었답니다.
그랬기 때문에 차이콥스키는 항상 아파야 했고, 언제나 괴로움과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어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며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에 심한 불안을 느끼고 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으며 스스로를 '맨날 우는 울보'라고 표현할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도박이나 마약과같이 끊을 수 없는 죄>로 표현하기도 했고요. (음... 왠지 가슴이 아픈 대목이지요.)
세상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사랑,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사랑을 했기 때문에, 차이콥스키에게 세상은 언제나 불안하고 슬픈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차이콥스키도 인생에서 단 한 번, 결혼을 하기는 했습니다.
사진에 계신 이 분이 바로 짧은 시간이나마 유일하게 차이콥스키와 부부의 연을 맺었던 사람입니다.
사진을 보니 선남선녀군요! 예쁘고 잘 생겼지요.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서로에게는 최악의 결혼이었습니다.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이었던 밀류코바는 차이콥스키의 오랜 팬이었어요.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사랑하고 그의 재능을 존경하고 연모했지요.
그러나 밀류코바의 구애에 대한 차이콥스키의 대답은
"네 마음은 고맙지만 난 너에게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해.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차이콥스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밀류코바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결혼에는 두 가지의 조건이 붙어 있는, 이른바 '조건부 결혼'이었어요!
1. 형제 같은(?!) 관계일 것
2. 나의 독특한 취향을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을 것
오우, 그야말로 어이없는 결혼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결혼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차이콥스키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의 결혼을 감행한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이 결혼을 두고, 항상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던 차이콥스키가 본인의 성적 취향을 감추기 위해 '결혼'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추측합니다.
밀류코바의 사랑 역시 평범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밀류코바는 차이콥스키가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 조건을 승낙하고 결혼을 감행합니다.
어른들이 그런 말씀하시잖아요. 일단 결혼해서 살다 보면 달라진다, 애 낳으면 달라진다..?
밀류코바의 마음이 그랬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좋아해서 결혼해도 살다 보면 형제가 되고 전우가 되는 게 결혼인 법인데(?!),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무리수를 둬서 결혼한 이 둘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요..?
1877년 7월 27일.
차이콥스키는 결혼생활 한 달 약 20일 만에 가출을 합니다.
차이콥스키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녀가 파충류처럼 끔찍하게 느껴져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단 하루도 그녀와 같이 보낼 수 없어. 저 여자와 함께 사느니 차라리 강물에 뛰어드는 게 낫겠어. "
차이콥스키는 이혼을 원했으나 밀류코바는 편집증 증세까지 보이며 끝내 이혼을 승낙하지 않아 이 둘은 서류상 끝까지 부부로 남아있지만 함께 한 결혼생활은 두 달이 채 못되었답니다.
밀류코바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남편 차이콥스키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다가,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그리고 차이콥스키 사후에 몇 년을 더 살다 1917년 세상을 떠납니다.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예술가들은 그 예민함과 기민함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불안한 경우가 실제로도 많은데차이콥스키는 가히 클래식계의 유리멘탈 넘버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곡가였을 거예요! 대인관계에 있어서 항상 불안을 느끼는 여리고 소심하고 상처받기 쉬운 매우 섬세한 사람이었으나 그런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류의 보물과도 같은 아름다운 곡들로 승화시킨 대 작곡가이기도 하지요!
아, 사실은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여있는 차이콥스키의 의문의 죽음과
그가 남긴 대교향곡 6번 ‘비창'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깁니다.
앞으로 꾸준히 쉽고 재미있는 클래식 이야기들을 엮어갈 예정이니
유익하거나 재미있으셨다면 또 놀러와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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