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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Oct 28. 2022

엄마 전화할게

 가랑비가 내리던 아침이었다. “민경아~ 일어나라, 밥은 먹고 가야지” 어제 먹다 남은 미역국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며 잠든 딸을 깨운다. 아이는 잠에 못 이긴 듯 반쯤 감은 눈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식탁의자에 걸터앉는다. 미역국을 한참 쳐다보더니 소고기만 골라 ‘우거적’ ‘우거적’ 씹으며 잠을 쫓는다.

  “띠리리~” 한참 부산하게 움직이던 내 손을 멈추게 한건 엄마의 전화였다. “야야~ 아직 자고 있나!, 애들은 학교에 갔나?”로 시작하시더니 “어제 상추밭에 물을 주려고 양동이 한가득 들고 가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삐었다” “손을 짚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수술한 왼쪽 다리에 힘이 빠지더니, 오늘 아침에는 한 걸음도 못 걷겠다. 어찌하면 좋겠노?” 급한 마음에 빠르게 솟아낸 말에 숨이 차신지 “휴~” 날숨 한번 쉬시더니 “일이 보이면 가만있지 못하는 이놈의 성격이 너거들 걱정만 시킨다. 속상하다. 속상해” 라며 자식들의 걱정스러운 잔소리가 두려 우신지 하소연을 하신다. 엄마의 하소연이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듣는 둥 마는 둥, 내 손은 딸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엄마 말을 끊을 타이밍을 보고 있을 때쯤 딸아이가 부른다. “엄마 학교 가져갈 물 챙겨줘 빨리빨리”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엄마 민경이 학교 보내고, 좀 있다가 전화할게” 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어수선한 아침 등교와 설거지를 끝내고, 물 묻은 손을 수건에 닦으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누고?, 필이가?” “야야 우짜노, 발목에 힘이 없어 자꾸 넘어진다. 네가 작년에 말한 것처럼 못 걷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겁먹은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흐른다. 불안한 엄마의 마음부터 진정시켜야 했기에 속사포처럼 솟아내는 엄마의 말을 가로막으며 “엄마 지금은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서 병원 가기가 힘들고, 좀 있다가 병원에 전화해 보고 다음 주쯤 모시고 갈게. 병원 가면 방법이 있을 거야. 걱정 많이 하지 마라” 그제 서야 차분해진 음성으로 “니 말을 들으니 좀 안심된다. 니 말이 약이다.”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일을 종종 겪는다. 엄마의 세월이 쌓이는 만큼 그런 날들이 늘어갔고, 자식들은 하나같이 잦은 병원 방문의 귀찮음과 걱정 서러움에 “엄마가 일을 놓으셔야 되는데, 병을 얻으면 회복이 힘든 연세라서 걱정이다.” 입을 모아 말했다. 자식들 중 병원을 자주 모시고 가는 나는 “90 노인이 왜 자꾸 일을 할라고 하노, 수술한 다리 무리하면 못 걸을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 말 못 들었나. 이제 자식들 고생 그만 좀 시키자” 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한 술 더 떠서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엄마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매번 밭 일로 인한 통증과 호출에 피곤한 내 마음이 비친 것이다.

  나의 그런 마음을 읽으셨는지, 긴 겨울 매서운 바람을 피해 막내딸 집에 오시는 날이면 거실에 덩그러니 앉아서 설거지하는 딸의 뒷모습을 보라보며 혼잣말로  “나이 사십에 동네 창피해서 니를 안 낳으려고 갖은 방법을 썼는데, 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누. 아플 때마다 니가 아니면 누가 병원 데리고 다니겠누. 그래도 병원물 좀 먹었다고 니가 편하더라.” “내 배속으로 낳은 자식들이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영감만큼 만만치는 않더라” 하시며 휴대폰 숫자 8번을 만지작거리시며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셨다. 엄마는 팔 남매를 낳으셨고, 휴대폰 번호순이 출생 순이다. 그래서 막내인 나는 8번이다.

  2년 전쯤 가을이었다. 오래전 자궁적출 수술을 하신 엄마는 밑이 불편하다고 하시며 나와 동행해서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부인과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으시며 “야야~ 부인과 병원에 자식이라도 니 오래비들 데리고 오는 건 좀 부끄럽더라, 니가 고생이 많다” 말하는 엄마도 천생 여자였다.

  산부인과 진료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엄마는 아쉬움이 남는 듯 뒤를 자꾸 돌아보시며 “야야 요즘 소변보기가 불편하고 뒤 끝이 영 찝찝하다. 병원 온 김에 한번 물어보고 가면 안 되겠나?”부끄러운 듯 조용하게 묻는다. 다행히 중급 병원이라 내과에 진료 접수를 하고, 의사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방광 초음파를 진행했다. 한참 후 간호사가 진료실로 나를 부른다.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영상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어머니의 방광에 혹이 있는데 크기가 좀 큰 것 같습니다. 빠른 시일 내 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불안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지만, 밖에 기다리는 엄마가 걱정할까 봐 눈물을 대충 닦고 진료실을 나왔다. 나는 예전처럼 엄마의 팔짱을 끼며 “엄마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네. 그래도 연세 있으신 분들은 큰 병원에서 검사 한번 받아보는 게 좋다고 하시더라”말하며 집으로 왔다. 그날 밤 나는 큰 오빠에게 전화했고, 대학병원에 예약했다.

  대학병원을 방문하는 날, 눈치 빠르신 엄마는 어린 시절 나처럼 조용히 내 손에 의지하며 진료를 받으셨다. 예약된 검사가 모두 끝나자 내 눈을 마주 보며 “내 나이가 몇이고 살 만큼 살았다. 니 아버지보다 10년은 더 살았네. 90이면 장수지. 지금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여한이 없다. 없고, 말고 ” 그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날은 칼날이 되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은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존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날들이었다. 언제나 그곳에 가면 우리를 반겨주시는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런 세상을 마주한다는 것은 두렵고 불안했다. 이런 날들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봤지만, 다가온 현실 앞에서 눈물이 흐르고 지난날의 무심했던 내 행동들이 자책감으로 다가왔다.

  돌이켜 보면, 어제 했던 이야기 오늘 또 하시는 엄마의 말을 듣는 척하며 안 듣고, 휴대폰에 엄마 전화번호가 뜨면 ‘또 병원 가자는 소리인가?’ 하며 받지 않은 적도 여러 번이다. 그 시간 속의 나는 철부지였었다. 이런 내 생각을 멈추게 하려는 듯 전화벨이 울렸다. 발랄한 목소리는 병원 간호사였다. “00 병원 비뇨기과입니다. 이순기 님 보호자 되시죠. 검사 결과 환자분의 방광에는 혹이 보이지 않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지난주 잡아놓았던 수술 스케줄은 취소해도 되겠지요. 자세한 내용은 의사 선생님을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엄마가 우리 곁에 조금 더 계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의 자책도 딱 거기까지였다. 내 마음처럼 들뜬 휴대폰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오빠와 언니들은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안도했다.

  전화를 끊고 엄마에게 살며시 다가가 손을 잡았다. 어젯밤 몸을 뒤척이며 잠을 설치시더니 아침이 되어서야 검은색 소파에 기대어 고개를 끄덕이며 쪽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어이쿠~ 내가 잠이 들었제” 라며 잠을 깨우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만지시는 손가락 사이로 어제보다 더 굵게 페인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말로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밤사이 많은 생각이 오고 갔음을 짐작했다. 나는 엄마의 주름 가득한 손을 만지며 “엄마 좀 전에 병원에서 전화 왔었는데 방광에 혹이 없어 수술은 안 해도 되고, 연세가 많으셔서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하는 것이 좋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 그제 서야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보이셨다.

 ‘좀 있다가 전화할게’하며 끊었던 엄마의 전화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 무심한 말에 엄마는 한나절을 기다리고, 바쁜 딸의 생활을 재촉하지 않으려고 하루해를 훌쩍 넘기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조심스레 휴대폰을 누르신다고 했다. 나는 주변인의 전화는 급했고, 엄마의 전화에는 여유를 부렸다. 가깝다고 소중함을 외면한 이기적인 딸. 그것이 내 모습이었다.

  요즘 나는 그때를 기억하며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매번 듣는 이야기에도 맞장구 쳐주고, 긴 이야기도 노래 삼아 듣는다. 바쁠 때는 끊을 때도 있지만, 후회하는 철부지가 되지 않으려는 나의 작은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엄마가 전화를 해야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막내딸인데, 나는 딸아이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기를 들어 결국엔 “엄마 귀찮아 그만 좀 해”라는 말을 듣는다. ‘아 내가 귀찮은 존재였나. 이런 서운함을 엄마도 느꼈을까?’ 그 서운함이 가시기도 전에 ‘피식’ 웃음이 난다. 나도 친정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외할머니가 그러셨고, 엄마가 그랬고, 어설프게 나도 그 길을 가고 있다. 부모로서 부족함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들에 실 날 같은 희망이 보인다.

 ‘사랑하는 엄마. 엄마는 그런 존재인가 봐. 깊은 마음을 다 보여주고 싶은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식들에게 한바탕 소리를 지르다가도 돌아서면 “픽” 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바보 같은 사랑만 하는 사람. 엄마 인가 봐’

  아침이 밝아 온다. 알람처럼 8번의 전화벨이 울릴 것이다. 큰 결심을 하듯 마음을 다진다. ‘오늘은 엄마의 전화를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들어주리라’ “띠리리” 전화기를 드는 순간 그 맘이 무색하게도 나는 엄마에게는 영원한 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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