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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Oct 22. 2022

아버지의 가을

시진:네이버 이미지

  아파트 정원을 걸으며 늦가을과 마주한다. 새색시 색동저고리처럼 울긋불긋 가을 옷을 차려입은 단풍이 마당을 뒹굴더니, 이내 날카로운 가을바람에 쓸려 건물 한 귀퉁이 소복하게 낙엽 무덤을 만든다. 마지막 낙엽을 힘겹게 붙들고 있는 앙상한 나무도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그리 달갑지 않은가 보다. 이 무르익어 가는 가을 속에 아버지가 있다. 넓은 들판에서 벼를 베고, 말리고, 이삭을 줍던, 까맣게 그을린 아버지의 모습이 가을 햇살 속에 숨어 있다.

  지난 주말 친정으로 차를 몰았다. 추수를 끝낸 텅 빈 논은 가을이 가고 있음을 자연스레 알렸다. 하지만 저 가을 끝자락에 서있는 내 유년시절은 지독히도 춥고, 바쁘고, 어두운 계절이었다. 주위에서는 가을을 ‘황금들판’이라 멋스럽게 표현했지만, 나에게는 추운 노동의 계절이었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소중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시작되면 부모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판에 계셨다. 우리 형제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교 갔다 오기가 바쁘게 부모님이 계신 논으로 향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베어 놓은 벼를 묶고, 볏단을 모았다. 산 아래 경지 정리가 된 넓은 논은 오후가 되면 햇볕이 자취를 감추는 추운 곳이었으며, 볏단을 나르고 날라도 내 어린 눈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가 지면 차가운 늦가을 바람이 우리의 얕은 옷을 뚫고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우리들의 마음을 읽으셨는지 아버지는 “어두워진다. 빨리하고 집으로 가야지.”힘주어 말하며 우리를 독려했다. 그러다 달이 떠오르면 식사 준비를 하시기 위해 집으로 가시는 엄마를 나는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뿌드득”볏단을 나르다가 벼 이삭이라도 밝을라치면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기에 나 보다 큰 까끌한 볏단을 소중하게 안았다. 들판의 큰 볏단 모둠이 완성되면 우리는 허기진 배를 쥐고, 꽁꽁 얼은 손과 발을 비비며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가을은 한밤이 되어서야 우리가 집으로 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날 따라 높이 떠오른 보름달은 집으로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춰주고 마음속 두려움도 숨겨 주었다.

  시골에서 가을은 유일하게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는 계절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작은 이삭도 소중하게 생각했고, 비바람에 1년 농사가 낮은 등급을 받을까 봐 늦은 밤까지 일을 하셨다. 그 당시 정부에서 농민들을 위해 가을에 수확한 벼를 수매 했고, 햇살에 잘 말린 벼를 1등급으로 매겼다. 그해 가을 추수는 다음 년에 팔 남매 배 안 굶기고, 학교 보낼 수 있는 경제력이어서 아버지의 절실함과 책임감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부지런함 덕분에 우리는 한 번도 배고픈 적이 없었으며 추운 겨울을 보내지도 않았다.

  또한 가을 추수가 끝나갈 무렵 아버지는 감 따는 부업을 하셨고, 떨어지고 상처 난 감은 어김없이 우리 집으로 왔다. 그 감들은 겨울 장독대 안에서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시원한 홍시가 되어, 긴 겨울밤 우리에게 유용한 간식이 되어 주었다. 가을에 쉴 틈 없이 자신의 지친 몸을 움직여 자식들에게 겨울 내 맛있는 간식거리를 만들어 주신 것도 아버지의 투박한 사랑 표현이었다.


  세월이 흘러 많은 농기계들이 개발되고 기계화되면서 농촌도 더 이상 사람의 숫자가 노동력이 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이런 세상이 왔는데도 나의 ‘가을’은 여전히 차갑고 어두운 들판에 덩그러니 존재한다. 그 달빛 아래서 묵묵히 일하시는 아버지의 어깨에 팔 남매가 있다. 가장이라는 멍에 아래 힘든 내색 안 하시고 부지런함으로 기운을 더 내시는 든든한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가을이 무르익으면 십 년을 훌쩍 넘어 우리 곁을 떠나신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만약 그 가을에 아버지가 안 계셨다면 그다음 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보니 아버지의 마음이 보인다. 가족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셨는지 그 아픔도 보인다. 늦었지만 가을 들판에 서있는 아버지께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버지 살아생전 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 키우신다고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이 그립 습니다.’ 이제야 부모 마음을 알아가니 이 딸도 참 늦게 철이 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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