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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정필 Oct 28. 2022

메리골드 꽃차

  흐린 오후, 따뜻한 메리골드 차 한 잔을 마신다. 조금 전까지 ‘확’ 달아오르던 열기가 순식간에 식더니 온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갱년기’란 놈이 또 찾아왔다.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 커피를 내릴까 하다가 늦은 오후라 꽃차를 우렸다. 노랗게 우려진 물속에 메리골드 꽃이 활짝 피었다. 암술은 앙증맞게 소복이 모여 있고, 암술을 에워싼 수술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물결 속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잎은 따뜻한 담벼락 아래 봄바람에 흔들리는 그 모습과 닮았다. 작년 봄철부터 가을까지 꽃차가 만들어지는 과정 안에 고령의 엄마와 나의 노고가 고스란히 묻혀있다.

  몇십 년째 엄마의 주머니를 채워주던 깻잎 농사가 힘들어진 것은 작년 겨울이다. 지팡이를 짚고 걸어도 넘어지는 횟수가 늘어나자 겁이 났던 엄마는 나를 불러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병원을 들어서자 간호사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라며 우리를 쳐다보며 묻는다. 나는 “어머니께서 걸을 때 발등이 접혀서 자주 넘어져요.”라고 말하니 사진부터 찍어 보자고 했다. X-ray 촬영을 하고 진료실로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은 특유의 시원시원한 사투리로 “할머니, 연골이 많이 닳았네요. 뭘 하셨기에 발등에 연골이 닳았어요.”라고 묻자 엄마는 “선생님요, 내가 깻잎 농사를 하는데 그놈을 따서 한 장 한 장씩 포갤 때, 발등을 밑으로 깔고 앉아서 그런가 보네요.”라고 대답한다. 의사 선생님은 발등에 연골이 많이 닳았다고 하시며, 연세가 많으셔서 수술을 권해 드리기는 어렵고, 이대로 유지라도 하려면 깻잎 농사를 그만하셔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의사 선생님 말이 끝나자 엄마는  “휴”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시더니, “이제 깻잎 농사도 걸렀네. 봄부터 가을까지 저 밭을 어떻게 놀리누.”축 쳐진 목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엄마 연세 일흔의 중반을 넘기자, 노령으로 힘에 부치신 지 논농사는 동네 이웃에 붙이고, 들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밭농사는 잡풀이 무성하도록 돌보지 않으셨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시작한 깻잎 농사는 쉬이 손을 놓지 못하셨다. 집안 텃밭에서 소일거리 삼아 봄부터 가을까지 물 주고, 영양제 줘가며  깻잎을 따고 팔았다. 그런데 내년부터 깻잎 농사를 그만둬야 하니 얼마나 허전하고 서운하겠는가?

  엄마의 한숨 속에는 ‘일을 할 수 없다’는 허전함도 있으셨겠지만, 깻잎을 팔아 하루하루 쥐어지는 현금의 아쉬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 현금의 쓰임새는 손자. 소녀들에게 통닭 한 마리씩 사줄 수 있는 여유와, 오래된 몸이 여기저기 아플 때 자식들에게 자신 있게 “병원 가자”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다 방면으로 엄마가 소일거리 겸, 현금이 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봄바람이 부드러운 어느 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카페를 방문했다. 커피와 함께 주문한 꽃차를 유심히 보다가 ‘엄마가 깻잎 대신 메리골드 꽃차 농사를 지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카페 사장님에게 꽃차에 대해 물어보고, 심는 것부터 수확까지의 과정을 들었다. 그리고 ‘꽃차 만들기’ 수강 신청도 했다.

  꽃차 농사에 대한 엄마의 반응은 시큰둥하셨지만, 나는 봄이 무르익을 5월 초순 종묘 사를 방문하여 메리골드 모종을 사서 친정집 앞 밭에 심었다. 시큰둥한 말과 달리 엄마는 깻잎을 키우시듯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며 정성스레 꽃을 가꾸셨다. 6월이 되자 길가의 관상용 꽃들보다 더디게 올라오는 것이 애가 타 속상해하셨지만, 7월의 햇살을 받은 꽃들은 옆으로 벌어지면서 휘청거릴 정도로 풍성해졌다. 그러자 엄마 얼굴에도 환한 꽃이 피었다. 드디어 첫 수확. 엄마는 햇살이 있을 때 꽃을 따면 시든 다고 하시며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꽃을 수확하는 노련함도 보이셨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들을 깨끗하게 씻어 바람에 물기를 말리는 과정은 엄마의 몫이었고, 꽃잎을 덖는 과정은 나의 몫이었다. 집으로 온 꽃들을 넓은 펜에 고르게 펴고 꽃잎이 타지 않게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덖었다. 덖는 과정은 꽃의 수분에 따라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8시간 이상이 걸리며, 한. 두 시간마다 뒤집는 과정이 포함되었다. 가끔 시골에서 늦게 꽃을 가져온 날은 밀리는 졸음에 잠깐 눈을 붙이면 어김없이 얇은 꽃잎이 타버렸다. 그렇게 수분체크가 끝난 후 꽃차는 긴 유리병에 담겨 상품이 되었다.

  꽃차를 수확하는데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뭄에는 그럭저럭 물을 주며 키울 수 있는데, 장마철에는 꽃잎 건조가 힘들어 조금만 늦어도 꽃잎이 시들 거나 섞었다. 섞어 나가는 꽃들이 아까운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불렀다. 그것이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이었다.

  그해 10월. 봄부터 가을까지 수확한 꽃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커피숍 사장님께서 많은 양을 주문해 주시고, 나머지 꽃들은 주위 지인과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엄마와 나의 꽃차 “꽃 따는 엄마”는 심심치 않게 팔려 나갔다. 남은 꽃들이 있었지만 새로운 꽃들이 수확되기 전인 내년 이른 봄철까지 판매를 해야 하기에, 년 말이 되어도 여유가 있었다.

  12월. 추운 날씨를 핑계 삼아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양념통닭을 시켜 놓고, 생산자 엄마와 판매자인 나는 마주 앉았다. 엄마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엄마, 꽃 농사짓는다고 수고했어요. 첫 수입이라 많지는 않지만 엄마 용돈에 보태 쓰세요.”라고 말하니, 엄마는 봉투를 받고 슬쩍 열어보신다. “야야 이렇게 많이 줘도 되나.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네가 고생했지” 하셨지만 첫 꽃 농사 수입에 만족하셨는지 슬며시 웃으신다. 봉투를 받아 든 엄마는 하룻밤을 주무시고, 우리 아이들에게 통닭 시켜 주라며 만원 지폐 몇 장을 식탁에 올려놓고 시골로 가셨다

  “띠리리” 며칠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야 내년에도 꽃 농사해볼까 하는데. 깻잎 농사보다는 다리가 덜 아프고 하루하루 돌볼 꽃들이 있으니 심심치도 않고 좋네.”숨이 차신지 잠깐 침묵이 흘렀다. “네가 덖는다고 고생하는 걸 보니, 그 말이 선뜻 나오지 않더라. 염치도 없고.” 말끝을 흐리셨지만 내년에도 꽃 농사를 지을 의지를 보이셨다. 나는 그렇게 해보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에게 깻잎 농사는 심심치 않은 노후였으며 손자. 소녀들에게 통닭 한 마리 사줄 수 여유였다. 그런데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허전하고 답답하셨을까? 한낮의 햇살 아래 할미꽃처럼 축 쳐진 엄마 모습을 보기가 안타까워 꽃 농사를 생각했다. 

  “꽃이 뭐가 돈이 되겠나.”미심쩍은 마음에 시작한 꽃 농사가 수입이 생기니 엄마의 얼굴에 메리골드 보다 환한 꽃이 피었다. 깻잎의 수입에는 못 미쳤지만, 엄마 생활이 건강해졌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앞으로 10년이 흐르면 엄마 연세는 100세가 된다. 그때까지 꾸준히 꽃 농사를 짓는 엄마의 모습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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