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열심히 말했다
정체 모를 이 자는 내가 환상인이라 부르는데
햇볕이 아직 남아있을 때 나타나곤 한다
그는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지만
그를 부정한 적은 없었다
기묘한 것은
그와 나는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 듯이 말하고
서로 곧잘 이해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오후에 먹은 커피가
뇌수를 경유할 때쯤
나는 환상인과 작별하는데
그가 누구였는지
어떤 것을 좋아했는지
어떤 얼굴을 가졌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조리
잊어버리고 만다
오후에 빛을 쬐는 공기 속엔
향기 없는 잔향만 남아있을 뿐
어쩌면
낡은 기억에서 사라졌을
환상 같은 사람들과
시꺼머질 사내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간 게 아닐까 하며
그리곤
나의 꿈결에 그가 찾아오듯
나 또한 꿈의 손님이 되어
마침내 다른 이의 환상이 되었을까 하며
나는 당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