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꽃밭에서

[ 에세이 ] < 그리움의 깊이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모습이다. 눈은 쑥 들어가 있고 엄마를 닮은 얼굴이 넙죽하다.

체중이 18킬로쯤 나갔으니까 키도 작고 마른 편에 속했다.

우리 집 꽃밭에는 꽃들의 합창대회가 열렸다.

여름이면 참매미의 독창에 맞춰 족두리꽃과 접시꽃, 봉숭아꽃이 돌림노래가 이어지고

하얀 박꽃이 돈사 지붕에 올라간 가을이면 국화와 과꽃의 합창대회가 열렸다.


꽃밭 옆에는 닭장과 모레 놀이터가 있고 꽃밭 끝 대나무울타리는 텃밭과 집의 경계였다.

대나무울타리에는 호기심 천사인 호박 넝쿨이 길게 드리워졌다.

호박 넝쿨 속 숨은 그림 찾기 놀이, 줄기 아래 숨은 애호박을 따오는 건 즐거운 놀이였다.


가마솥이 지글지글 끓더니 달달거린다.

엄마는 뚜껑을 열어 가마솥 밥 위에 호박잎, 강된장, 동태찜, 황석어젓, 계란찜을 한다.

가마솥 두 개를 양쪽에 보디가드로 둔 작은 양은솥에 불을 지핀다.

엄마는 애호박을 썰어 새우젓에 살짝 절여 고춧가루, 물을 자작하게 부어 애호박찌개를 끓였다.

애호박 찌개가 그리은 건 순전히 엄마의 손길이 들어간 요리가 그리운 게지.


꽃밭 오른쪽에는 작두 우물이 있다. 바닥에 붙어있는 넓적한 돌판은 빨래판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논밭을 누비며 더럽혀진 작업복과 아홉 식구 내의와 겉옷이 양잿물로 만든

투박한 빨랫비누를 온몸에 감고 돌 빨래판 위에서 춤추다 방망이찜질을 당했다.

빨래들은 물 샤워를 마치면 빨랫줄에 기다랗게 걸려 썬텐을 즐긴다.


우리 고향집은 365일 대문이 없어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오픈된 집이었다.

수문장처럼 서 있는 방울나무는 모르는 사람이 오면 던지려고 방울을 만지락 거린다.


작두우물 옆에는 할아버지가 심은 백일홍나무와 작은 키의 대추나무가 있었다.

작두우물에서 나온 물은 좁은 고랑을 내달려 쏜살같이 내려간다.

좁은 고랑에 심은 돌미나리는 하수구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었다.

마른장마에는 물이 흐르는 고랑의 물을 퍼서 부추 밭이나 배추, 상추밭에 뿌려주었다.

내일은 애호박찌개나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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