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의 내 모습이다.
눈은 쑥 들어가 있고 엄마를 닮아 얼굴이 넙죽하다.
체중이 21킬로쯤 나갔으니까 키도 작고 마른 편에 속했다.
우리 집 꽃밭에는 꽃들의 합창대회가 열렸다.
여름이면 참매미의 독창에 맞춰
족두리꽃과 접시꽃, 봉숭아꽃이 돌림노래가 이어지고
하얀 박꽃이 돈사 지붕에 올라간 가을이면
국화와 과꽃의 향기 대회가 열렸다.
꽃밭 옆에는 닭장과 닭들의 모레 놀이터가 있고
꽃밭 끝 대나무울타리는 텃밭과 집의 경계였다.
대나무울타리에는 호기심 천사인 호박 넝쿨이 길게 드리워졌다.
호박 넝쿨 속 숨은 그림 찾기 놀이
줄기 아래 숨은 애호박을 따오는 건 즐거운 놀이였다.
커다란 가마솥이 지글지글 끓더니 뾰옹뾰용 달달거린다.
엄마는 뚜껑을 열어 가마솥 밥 위에
호박잎 찜. 되직한 된장찜, 동태찜, 황석어젓 찜을 한다.
가마솥 두 개를 보디가드로 둔 작은 양은솥에 불을 지핀다.
엄마는 애호박을 반달로 썰어 새우젓에 살짝궁 절인다.
고춧가루, 다진 마늘과 물을 자작하게 부어 애호박찌개를 끓였다.
애호박 찌개가 가끔 생각나는 건 순전히 추억이 그리운 게지.
꽃밭 오른쪽에는 작두 우물이 있다.
작두 우물 바닥에 붙어있는 넓적한 돌판은 빨래판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논밭을 누비며 더럽혀진 작업복과
아홉 식구 내의와 겉옷이 투박한 빨랫비누로 온몸을 화장하고
돌 빨래판 위에서 춤을 추다 방망이찜질을 당했다.
빨래들은 물 샤워를 마치고 빨랫줄에서 썬텐을 즐긴다.
우리 고향집은 일 년 365일 오픈되었다. 대문이 없었다.
수문장처럼 서 있는 사오 년 된 플라타너스는
도둑이 들면 던지려고 방울을 매달고 있는 방울나무가 있었다.
작두우물 옆에는 할아버지가 심은 백일홍나무 한 그루와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작두우물에서 나온 물은 좁은 고랑으로 쏜살같이 내려간다.
좁은 고랑에 심은 돌미나리는 물 정화대장이었지.
마른장마에는 고랑의 물을 퍼서 부추 밭에 뿌려주었다.
내일은 애호박찌개나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