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아내가 있는 사람은

[단편소설 연재 ] < 불편한 진실 > 유정 이한

by 유정 이숙한

초저녁에 잠든 현우는 새벽에 잠이 깨었다.

하연이 보낸 글을 읽고 황당했다. 그건 잠투정이 아니고 청천벽력이었다.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머릿속이 온통 하얗다.


그의 진심을 모르는 하연이 아닌데 이런 통보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태어나서 사랑이란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20대 끓는 피가 솟구쳐 주체하지 못해 한 사랑이

아닌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된 사랑은 처음이다.

이부자리에서 뒤척이다 벌떡 일어났다.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화장실에 가서 방광을

비우고 눈곱을 닦느라 대충 세수하고 거실을 거쳐

현관문고리를 살며시 잡아당긴다.

그의 마음을 알고 비명소리 내지 않고 열린다.



새벽 공기가 차갑다.

안개비에 젖은 아스팔트에 하연의 얼굴이 비친다.

찬 바람이 반려견처럼 아양을 떨며 파고든다.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초점 없는 눈은 멍 때리며 밖을 본다.


새벽 전철은 자리가 많이 비어 헐렁하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 시선을 던진다.


초점 없는 눈으로 한 곳을 응시한다.

H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오르니

딱딱 소리를 내며 걷던 하연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편의점을 지나 지하 1층 작업장으로 내려가다 정신이 든다.




익숙하게 비번을 누르고 사업장 문을 열었다.

급히 해나가야 할 작업이 있어 마음이 바쁘다.

덧문을 열고 작업장으로 나가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사무실에 들어가 같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서

하연을 강퇴시켰다. 카카오스토리 친구도 뺐다.

하연의 그림자를 찾아 지울 수 있는 건 다 지웠으나

분이 풀리지 않는다. 화가 끓어오르고 부아가 났다.


‘내가 뭘 그리 큰 죄를 지었다고 정신적 이혼 상태인데, 사랑이 죄인가,


아내가 있는 사람은 사랑을 하면 안 되는 건인가?’

화가 나서 거꾸로 피가 끓어오른다.

전날 만든 제품을 무표정한 얼굴로 소포장한다.


핏기 없는 얼굴이 파리하고 백지장처럼 하얗다.

아침도 굶고 점심은 생략하고 멍한 상태로 지냈다.

그의 생체 시계가 그대로 멈춘 것일까,



전철에서 내려 들어가는 길에 막걸리와 소주를 샀다.

집에 들어가자 방문을 닫고 쓰디쓴 소주와 막걸리를

여러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정신이 말짱하다.

몇 잔을 냅다 목 안으로 들이붓더니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어떻게 찾은 사랑인데 이대로 멈출 수 없다?

유령 존비처럼 초점을 잃은 영혼은 허공을 떠다닌다.

술로 끼니를 대신하며 마시며 긴긴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세수를 했는지, 이를 닦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아 아침도 거르고 일찍 출근했다.

전철 안의 사람들 모두 행복해 보이고 밝아 보인다.


멍 때리며 하루를 보냈는데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이틀 채 물만 넘겼더니 몸이 휘청 거린다.

퇴근길에 소주와 막걸리를 샀다.

주춤거리며 나가려던 몸살과 독감이 눌러앉았다.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으나 밥알이

넘어가지 않아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하연은 현우의 전화를 차단했다.


하연은 현우를 기다리다 지쳤다.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그가 내려오지 않는다.


하연은 현우가 내려온다고 하니 바빠졌다.

새벽이라 마트도 문이 닫혀 있고 뭘 해줘야 하나

발만 동동 구른다.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 전화가 없다.


현우에게 언제쯤 도착하는가 카톡을 보냈다.

현우가 말한다.

- 내가 농담한 건데, 그 말을 믿은 거야?

현우는 실없는 농담을 여러 번 했다.


현우의 말에 다리가 풀리는 하연이다.

사람을 가지고 놀아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아내의 눈치를 보고 산다면, 졸혼한 게 맞나?'


소 닭 보듯이, 한 집에 살지만 방을 따로 쓰고

말을 섞지 않는다면서 아내 눈치를 보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 하연이다.

졸혼을 했다면 눈치 같은 건 보지 않아야 한다.

하연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어쩌다 아내가 있는 사람을 사랑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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