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1월 13일 오후 1시.
화창한 가을날
영등포 신한예식장 50석 홀
남녀의 예식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한 남자와
같은 운명체로 하나가 되었다.
처음 만남은 회사 근처 중국집에서
친구와 짬뽕을 먹을 때였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날 쳐다보았다.
아이가 둘 쯤 있어 보이는 유부남 같았다.
그 남자는 우동을 먹었다.
나와 잘 보이는 곳에 앉아있었고
앞꼭지가 간지러워 쳐다보면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짓는 그 남자!
친구와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고 할 때
남자가 물었다.
우리 회사에 입사하려고 한다며
회사에 대한 정보를 묻는 거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는 대로 말해주었다.
그리고 까맣게 잊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보온통에서 물을 따라 마시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아는 체했다.
누군지 몰라 물으니
며칠 전 중국집에서 만나지 않았냐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한 번 본듯한 얼굴이다.
그가 우리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때 우리는 3교대 근무였다.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부모님이 하는 연쇄점 반을 막아
분식집을 하다 부모님께 양도해 드리고
그 당시 결혼 적령기인 25세에
그 회사에 입사했었다.
남자는 나와 다른 조 근무였는데
개인사업을 하다 문을 닫았다고 했다.
약혼녀가 지병으로 떠나 많이 외롭다고 했다.
우리는 만난 지 8개월 동안 제대로 된
데이트는 한 번 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매일 가게를 보러 다니는 것이
일과이고 데이트였다.
3개월 후에 부천시 소사동에
신축 건물에 점포를 얻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갔다 온 후
가게에서 치킨과 생맥주,
점심으로 닭칼국수와 삼계탕을 팔았다.
가게가 잘 됐으니 술을 취급하므로
체질에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임신이 되지 않아
가게를 타인에게 양도하고 쉬며
한약을 먹으며 건강을 돌보게 되었다.
다시 가게를 얻어 치킨과 칼국수, 삼계탕,
돈가스와 햄버거가 주 메뉴였다.
새로 시작한 후 결혼 3년 만에 임신이 되었다.
임신 8개월 반쯤 되자 힘들어서 가게를 접고
서울로 이사하여 첫 아이를 낳았다.
살면서 우린 툭하면 여행을 다녔다.
가게를 할 때도 눈이 내리면
눈 구경하러 설악산도 가고
국내 여행을 자주 다녔다.
결혼은 우리 인생에 중요한 도전이다.
살아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무리 긴 시간을 연애했다고 해도
살아보기 전에는 장단점을 알기 어렵다.
우리가 가진 본질적인 성격이나
마인드를 포장하고 사는 셈이다.
성격에 흠결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의 본질적인 장르인 인성!
부모님 사이가 원만하면
자식들 대부분이 좋은 인성을 가진다.
서로 반목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늘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봐야 한다.
"내가 상대방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갈등이나 원망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니 완전할 수 없는 것.
사랑은 20%, 이해가 80% 라야
원만한 가정이 유지된다.
상대방이 내게 이렇게 했으니
되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만남은 영원토록 이어질 수 없어
결별이나 이별을 선택하게 된다.
어느 누구를 만나든 상대방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오해라는 것도 질척대지 않는다.
2020년 11개월 화장실 출입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갇혀 살던 그 사람!
내게 맘고생, 몸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고
마지막 고백을 했다.
나와 함께 살면서 일방통행으로 일관한 것을
진심으로 용서해 주었다.
우리 사랑 보다 먼저
참된 용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