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봄으로 기억이 된다. 인천의 큰고모집에 얹처 살 때. 방 한 칸은 큰고모부가 지어줘 거저 살았다.
같은 집에 세 들어 살던 새댁 언니는 무척 바지런하고 살림꾼이었다. 언니 남편은 화물차 기사로 기억된다.
새댁언니 부부는 다정다감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임신이 되지 않아 친정엄마나 고모도 안타까워했다.
키도 크고 날씬하고 얼굴이 주근깨가 살짝 있고 까무잡잡했지만 비교적 성격도 좋고 예쁜 얼굴이었다.
큰고모부와 나, 새댁언니는 언니의 남편이 운전하는 화물차를 타고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부평에서 동암을 지나 우측 길로 빠져 한참을 가다 내렸는데 비릿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오래된 부두였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어젯밤 검색해보니 인천시 동구 만석동 부두였다. 지금도 현존하는 부두라고 한다.
그곳에 내려 조개를 캐는 쇠갈퀴호미를 사고 정부미 쌀포대를 싣고 배를 타고 바다를 향해 한참을 달려갔다.
그 배에는 조개를 캐러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바다 한가운데 우리를 짐짝 부리듯이 쏟아놓고 갔다.
그 무리 속에 우리도 있었다. 물이 쭉 빠진 갯벌에서 조개가 지나간 자국을 남긴 곳이면 쇠갈퀴호미로 갯벌흙
을 뒤집어보면 적으로 알고 경계하느라 물총을 쏘는 조개들이 한 집에 네댓 개씩 웅성웅성 모여 살고 있었다.
거의 3시간 조개를 잡았는데 정부미 포대로 한 자루를 캤다. 갯벌 흙은 생각보다 질퍽거렸다. 그런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나는 허리가 아파서 끙끙거리며 다녔다. 하지만 새댁언니는 허리가 아프지 않은 건지 끙끙대지 않고 물 만난 물고기들처럼, 갯벌을 사수한 장수처럼 정신없이 조개를 캐더니 끙끙대며 두 자루나 잡았다.
밀물시간이 다 된 건지 바다에 내려주고 갔던 배가 우리를 태우러 왔다. 우리는 배를 타고 포구에서 내렸다.
그때 잡았던 조개는 짬뽕에 들어가는 조개류였는데 백합과 비슷했다. 할머니는 이 손녀딸이 잡아온 조개들을소금물에 담가 며칠을 해금시키더니 껍질을 벗겨 조개 살로 조개젓을 짭조롭하게 맛나게 담그셨다.
어제 전곡항을 갔다 오는 길에 물이 빠진 바다를 보니 불현듯 바다에 나가 조개를 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조개를 캐던 곳이 어딘가 검색해 보니 영종도 부근 갯벌이었다. 익산에서 이사와서 1975년부터 1982년 가을까지 인천에 살았다. 내가 살았던 인천시 북구 청천동 181번지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바다를 보려면 철마산을 넘어가는 버스를 타고 동인천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연안부두로 가야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새댁언니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후에 아기를 낳았는지 소식을 모르지만 부부가 착하고 부지런하며
인품도 좋았으니 하늘에서 복을 받아 아기를 낳았을 거 같다. 어느 곳에서든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