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사랑에 빠지다!
지낸 해 시월 어느 날이었다.
친구 소개로 한두 번 만난 사람이 있었다.
친구와 또 한 사람이랑 같이 군산 선유도에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긴급한 납품 때문에 전날 약속을 펑크 냈다.
난 근무하던 식당에 휴가까지 냈는데..
약속을 펑크 내고 친구에게만 연락하고 나한테는 미안하다는 전화가 없었다.
밤을 새워 일을 해서 납품을 마쳤다는 문자가 왔다.
어쨌거나 무슨 남자가 일처리를 그렇게 할까?
친구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 그 친구는 아주 친한 척했으니까.
그 친구는 남편과 떨어져 살았는데 남편이 있으니 거리가 있던 모양이다.
그 후에 친구와 다른 남자 두 사람이랑 저녁을 먹었다.
그때 그 사람이 솔로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냥저냥 괜찮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에게 전화가 왔다.
근처 거래처에 일이 있어 왔다며 차 한잔 하자고 했다.
오후 5시면 저녁을 먹은 시간인데 차를 마시려니 내키지 않았다.
매일 식당밥을 사 먹는 것으로 아는데 찬은 없지만 집밥을 차려주고 싶었다.
시간이 촉박하니 마트에 갈 시간도 없었다.
그저 소소하게 내가 먹는 대로 나물과 된장찌개를 끓여주었다.
냉동실에 꽁꽁 얼려둔 꽃게로 양념게장을 했는데 게가 녹지 않았다.
양념게장 양념은 맛있는데 실패작이다.
그땐 그분의 식성을 1도 모를 때이다.
처음 방문하던 날 뭘 사 와야 할지 몰라 꽃다발을 들고 왔다고 했다.
금방 도착한다고 하더니 꽃을 사느라고 시간이 좀 걸린 거 같다.
꽃이 그의 성격대로 깔끔하고 아주 예뻤다.
오랜만에 받은 꽃다발이라 마음이 즐거웠다.
어쨌거나 저녁 식사를 마친 사람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와
자라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끓여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집에 간다고 나섰다.
그분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 배웅해 주고 들어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 무렵 늘어나는 체중 때문에 오후 5시 전후로 저녁을 먹을 때였다.
'시간을 약속하려면 하루 전날 해주어야지 당일에 전화를 하다니?'
혼자 두런두런.
저녁을 이미 먹었다고 했더니 차를 마시자고 했다.
저녁식사를 해야 할 시간인데 차를 마시긴 내키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나은 집밥을 차려주었다.
식사를 맛있게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은 무척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입은 말을 하지만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그 상태로 보내면 운전하고 갈 터인데 사고가 날 거 같았다.
"많이 졸린 거 같은데 한숨 붙이고 잠 깨고 나서 가세요."
라고 하며 내 작은 침대를 빌려주었다.
그는 내 침대에서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깊은 잠을 자고 있다.
거실에서 넓은 상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노트북에 글을 쓰고 있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인데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내 상이 있는 옆에 비스듬히 드러눕더니 하룻밤 재워달라고 했다.
어떻게 대답을 할까? 잠시 머뭇거렸다.
이제 나이도 먹었는데 내외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는 내 손을 살짝 만진다.
그렇게 우리 사랑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저 친구 소개로 두세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갔다.
나보다 두 살 연상인데 인성이 참 좋다. 성격이 모나지 않았다.
어느 날은 거래처 미팅이 있어 술을 마셔야 해서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올 때마다 그의 식성을 하나씩 알아갔다.
난 식당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먹다 남긴 거 주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 무렵 나도 집 근처 식당에 알바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근무하는 식당에서는 남긴 것을 주지 않지만
대부분 식당들은 손님이 남긴 것을 주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우린 그렇게 하루 이틀 만나고 같이 밥을 먹고 자고 가고
가끔은 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하나 둘 그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우리 큰애가 하는 말이 엄마는 금사빠라고 하며
"천천히 더 그분에 대해 알아가도 늦지 않는데 엄마는 성격대로 급하세요?"
라고 했는데 그렇게 갑자기 친해지게 된 것이었다.
그분도 나처럼 가진 것을 모두 잃었다.
마스크 공장을 하느라 투자 중에 코로나가 종식되어 가면서
줄을 서서 마스크를 받아가려고 길게 늘어선 차량들이 뚝 끊어지고
줄 지어 금융권 독촉전화가 빗발쳤다.
이십억 투자해서 고물값에 기계를 처분하고 나니 손에 쥔 것이 없다.
살고 있던 집을 처분해서 금융권 빚을 갚다 보니 나처럼 제로가 되었다.
그런 분에게 일을 시키고 수고비를 주지 않은 사람이 몇 명 있으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