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큰소리쳤는데?

[ 단편소설 연재 ] < 모태솔로의 사랑이야기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그는 빚을 갚으려고 돈 머리를 계산해 보았다. 다 갚고 나면 손에 쥐는 건 없고 모자랄 판이다. '그럴 바엔 한 번 더 당겨 보자!'라는 생각에 공부방으로 향했다. 공부방에 갔더니 서너 명이 거나하게 취해 화투패를 돌리고 있었다. 한 남자가

- 형씨가 간이 작아서 사업장에 영원히 나타나지 못할 줄 알았지, 뭐여? 오늘도 돈 따면 화장실에 가는 것 아녀? 무슨 바람이 불어서 행차하셨나? 지난번 따간 돈 풀어 늘려가려고 왔으니 간이 콩알만 해지고 탱글탱글한 아랫도리가 바짝 오그라드네그려, 아이 무서워라!

그는 기가 죽을세라 큰 소리로

- 사업차 지방에 급한 일이 생겨서 갔다 오느라고 그런 거지, 무섭긴 뭐가?

얼굴에 긴 칼자국 있는 사내가 괴이한 웃음을 흘렸다. 화투판이 생각보다 컸다. 1점당 이천 원이지만 기죽지 않고 끼어들었다. 점수가 나자 그의 앞자락에 지폐가 수북이 쌓였다. '슬슬 일어날까?' 엉덩이를 들먹일 즈음, 창고에 쥐구멍이 생긴 걸까? 그 앞에 쌓였던 천만 원이란 돈이 야금야금 새어나갔다.



꼬박 하루를 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니 딴 사람은 없고 잃은 사람뿐이다. 공부방 주인만 이긴 사람에게 고리를 뗀 돈이 제법 짭짤할 뿐..

-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더니 형씨 또 화장실 갔수! 지난번처럼 끗발이 오를 때가 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사내는 은근히 찬수를 갈궜다. 오기가 발동하자 1점당 오천 원으로 상향시켰다. 찬수 앞에 쌓인 돈이 바닥을 드러냈다. 굴뚝을 등지고 앉았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타자는 화투 몇 장을 옷소매에 지니고 다닌다.

그런 줄 모르는 그는 지난번 뒷돈을 대주던 형이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 초조하다. 점수가 나면 2배로 갚아 준다고 큰소리쳤는데 따기는커녕 돈을 꾸어야 할 판이니 대략 난감했다.


음식점 주인에게 꾼 돈이 오백만 원이 넘었다. 그는 일행들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화장실에 가지 않았더니 점수가 나지 않네, 이번 판은 쉬고 물 좀 빼고 와야지.



그가 뒷문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척, 줄행랑치려고 할 때, 누군가 오른쪽 귀를 확 낚아챘다. 주먹이 날아오고 번개가 쳤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왕년에 주먹 대장인데 얻어맞다니…? 찬수가 주먹을 되받아치려는 순간 멱살을 잡히고 말았다. 지난번 돈을 따고 갚지 않았다. 이번에 돈을 따면 따따불로 준다고 했다.


그 말에 속아 돈을 또 꾸어준 선배 형이다. 공부방을 제공한 주인이다. 남자 체면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일주일의 말미를 벌었다. 땅문서를 잡혀 대출을 받아 갚겠다고 큰소리쳤더니 거머쥔 멱살을 놓아주었다.



빚쟁이들이 노름빚을 받기 위해 그의 집 앞에 잠복근무를 했으나 그림자도 없다. 애꿎은 두 노인네들을 괴롭혀 봤자 돈 나올 구멍이 없는 것을 알았다. 죄 없는 노부만 속이 끓어 속병을 얻고 드러누웠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이 없는 막내아들 때문에 화병으로 누워 있을 뿐이다. 무심한 세월만 정처 없이 흘러갔다.


채권자들이 지쳐갈 때 남루한 차림의 그가 나타났다. 채권자들이 그를 잡아보니 쌍방울에 빈 주머니만 덜렁거릴 뿐이다. 콩밥 먹으라고 집어넣어 봤자 나올 것도 없으니 반쯤 포기하고 하나둘 모습을 감추더니 그림자들이 사라졌다.



그는 채권자들의 속셈을 훤히 꿰고 있었다. 다만 동네 사람들 눈에 띄면 혀를 차는 모습이 싫었다. 야행성 수캉아지가 밥때 찾아가듯이 속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왔다. 백주 대낮에 집에 들어갈 만큼 뻔뻔한 인간은 아니었다. 벌써 두 해째, 컨테이너로 된 자재창고가 있는 건재상에서 새우잠을 자다 일이 들어오면 일터로 나갔다.

그는 타고난 미장이였다. 손만 댔다 하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손재주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술 마시면 눈이 마주친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툭하면 싸우고 부수고 돈 물어주는 것이 다반사요, 특기는 음주운전의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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