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정의의 사도

[단편소설 연재] < 모태 솔로의 사랑이야기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그는 밤늦게 음주 운전하면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교통경찰도 모르는 샛길이나 농로를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밤눈이 밝은 것은 생쥐 다음으로 가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알코올 기운이 없으면 그야말로 새색시라,

예쁜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데 술이 들어가면 게기를 부르면서 호통을 친다.

많은 돈을 벌었으면서 변변한 옷 한 벌이 없다. 파란 양복이 전부이고 아내도 없고 토끼 같은 자식도 없다.

즐거움이란 단어가 그에게는 손님이었다.


주변에 돌싱도 많은데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한 사람이 찬수 말고 또 있을까? 힘들게 먼지 먹으며 돈 벌어서 모두 나눔 하고 그림책을 좋아해서 한입에 털어 넣거나 먹고 튀며 살아온 그였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서희에 대한 그의 사랑이었다. 보고 싶어 참을 수 없으면 찾아가서 서희가 타 주는 커피 한 잔 마시면 숨을 쉬는 거 같았다.



그가 나이 들면서 형을 닮아가는 건가, 술을 마시면 눈이 마주친 사람에게 시비를 건다. 답습하는 것도 내력일까, 못된 술버릇까지 생겼다. 병명이 <여우 증후군>이었다. 착한 여우를 만나면 나을 병이라고 하지만. 어디서 그런 착한 여우를 찾는단 말인가? 미련한 청설모를 닮은 것인지, 알밤을 발견하고 땅속에 묻어두고 매일 영역 표시를 한다. 소나무 밑에 숨겨둔 먹이 창고를 잃어버린 청설모는 너무 표시가 많아 찾지 못한다. 청설모가 묻은 먹이 창고에 도토리나무가 자라고 밤나무가 자라게 하는 천하의 나무 심기 대장이 청설모이고 찬수였다.



P시 A읍에 그가 즐겨 찾는 주막이 있다. 탁자라야 예닐곱 개가 전부인 아담한 주막이다. 주모는 음식 솜씨도 그럭저럭 쓸만하고 뒤끝이 없고 싹싹해서 뭇 사내들이 모여들었다. 주모 혼자서 주막을 꾸려 간다. 사십 대 중 후반쯤 되었으니 찬수보다 두서너 살 아래다. 찬수는 주모에게 눈길이 간다. 공사 팀들과 회식 겸 식사를 하고 술도 몇 잔 했다.


거치적거리는 남편도 없고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주막집이다. 찬수는 과수댁 혼자 운영하는 술집이나 카페, 식당을 사냥개처럼 용케도 냄새를 잘 맡는다. 주막에 몇 번 드나들며 얼굴을 익혀둔 터, 주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술을 마셔도 객기를 부리지 않고 최대한 점잖은 척했다. 그게 가능한 것일까,


여자 혼자 장사하려니 집적대는 인간들, 술 처먹으면 지랄병 도진 인간들이 있는 법, 술을 취급하는 업소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니 주막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비싼 술안주가 홍어삼합이다. 비싼 안주시켜놓고 있는 폼 없는 폼 잡는다. 막힌 코가 뻥 뚫리는 암모니아 냄새에 뿅 간다. 환장하고 처먹는 인간도 있지만. 뱉지도 삼키지 못하는 이도 더러는 있었다.



착한 가격의 돼지국밥에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며 공사장에서 보낸 하루를 안주 삼아 떠들어댄다. 그들에게 진짜 안주는 잔소리였다. 공짜로 주는 국밥 국물과 소주나 막걸리, 머리고기를 새우젓에 찍어 먹으면 주머니가 넉넉지 않아도 행복했다. ‘홍탁’ 항아리에 짚과 소금을 넣고 삭힌 퀴퀴한 냄새가 술을 부른다. 잘 삭은 홍어와 된장과 생강, 소주를 넣고 삶은 기름기 흐르는 삼겹살 수육. 눈이 질끈 감기는 시큼한 묵은지를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내는 주모다. 보기만 해도 행복에 겨운 웃음이 절로 터진다.


코가 찡긋, 톡 쏘는 홍어와 부드러운 수육을 시큼한 묵은지에 싸서 한입 가득 입안으로 밀어 넣고 시큼털털한 막걸리를 곁들이면 ‘카’ 목구멍이 호사한다. 인부들의 힘든 인생살이가 그 속에 녹아있다.


어떤 인간은 홍어삼합 대(大) 자로 주문해서 막걸리랑 맛있게 처먹더니 우쭐대던 기분은 어디 간 것일까? 소주보다 더 취하는 것이 막걸리라는 걸 몰랐나, 돈을 낼 때가 되니 하나둘 화장실에 간다고 꽁무니를 뺐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일행 중 한 명이 자리에 앉아있다. 그가 손님에게 계산서를 내민다. 엉거주춤 일어나며 소피가 마려운 양 연기한다.

keyword
수, 토 연재
이전 14화14화. 큰소리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