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바늘과 실처럼

[ 단편소설 연재 ] < 모태솔로의 사랑이야기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늦은 밤이면 술 취한 취객들이 드나들고 매출도 오르지 않으니 식당 문 걸어 잠그고 입담깨나 좋은 중년의 여자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모이기만 하면 화투판을 벌였다. 찬수와 주모는 화투에서 이긴 사람이 내는 돈. 일명 고리를 뜯는 것이 부업이 되었다. 여자들은 찬수를 주모의 기둥서방으로 알고 있으나 정작 두 사람은 잠자리 한 번 한 적 없다. 매월 6일, 11일, 16일과 21일, 26일과, 31일이면 그 지역 민속 장날이었다. 주모와 찬수는 장날이면 장터에서 데이트했다. 찬수가 좋아하는 돼지 머리 고기에 소주를 곁들여 서너 잔 마시고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먹고 이른 시간에 주막으로 돌아왔다. 주모는 피곤한데 잠깐 눈을 좀 붙이자며 찬수를 방으로 끌어들였다. 그녀도 어지간히 남자 품이 고팠던 모양이다. 졸지에 주모의 남자가 된 찬수는 중노미가 되어 바

늘 가는데 실처럼 붙어 다녔다. 2년 넘게 깨를 볶으며 행복하게 지냈다.



그는 돌을 붙이는 일이 있거나 바닥을 바르는 일이 있으면 일터로 나가고 일이 없는 날은 주모와 함께 주막을 운영했다. 겨울에 되자 건축일이 없다 보니 엉거주춤 주막에 눌러앉았다. 주모가 술을 마신 날은 그가 주방 일을 도맡아서 하다 보니 주모는 차츰 게을러졌다. 힘들게 공사장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고리 뜯는 수입이 제법 짭짤했다. 군대에서 취사병 출신인 찬수는 칼질도 잘하고 화투판 멤버들의 입맛을 그런대로 잘 맞췄다.

주모가 광이나 팔고 화투판에 흥을 돋우는 것쯤으로 생각했으나 식당일은 뒷전이고 화투 치는 일이 주업이 되었다. 찬수가 옆에서 코치해주지 않아도 제법 쏠쏠하게 잔돈푼을 긁어모았다.


찬수는 화투판 전사들에게 닭볶음탕이나 돼지 술국을 안주로 내다 주면서 매출을 올렸다. 주모는 오전에 음식 준비하고 저녁이면 투전판 전사가 되었는데 타짜였다. 음식점은 폼이고 주업은 화투치기였다.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그 두 사람에게 딱 맞는 말이다.



그는 요리 솜씨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고 설거지도 잘하고 술안주도 곧잘 만들었다. 둥글둥글한 그의 성격처럼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건강했다. 어느 날 수소문 끝에 노름돈을 꾸어준 선배 형이 주막에 나타났다. 다짜고짜 찬수에게

- 찬수야, 나도 좀 살자? 내가 돈이 없어서 우리 식구들이 길에 나 앉게 생겼다. 한 번에 갚으라고 하지 않을 테니, 버는 데로 매일 4만 원씩 갚아라! 한 달이면 백만 원은 갚을 수 있지 않겠니?


찬수는 난감했다. 주모에게 얹혀사는데 돈은 무슨 돈? 선배 형은 하루가 멀다 하고 주막에 들렀다.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들더니 주문해서 먹고 마시고 돈은 내지 않고 그의 월급에서 공제하라고 했다. 참다못한 찬수가 선배 형의 손을 잡고 뒷마당으로 갔다. 그러자 선배 형이 말했다.

- 찬수야, 미안한데 우리 집 길에 나앉게 생겼다. 얼마라도 나눠서 갚아주면 안 되겠니?

- 형, 미안한데, 나 돈 없어요. 월급도 받지 않고 얹어사는 거예요, 마련해 볼 터이니 한 달 후에 오세요.

- 돈이 없으면 땅문서라도 좀 줘라. 내가 알아서 대출해서 쓸 터이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은 주모는 낯빛이 달라졌다. 들었지만 듣지 못한 척했다. 찬수가 선배 형을 설득하여 한 달 후에 주기로 약속하고 가까스로 돌려보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은 주모는 낯빛이 달라졌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


약속한 한 달이 다가오자 찬수는 입맛도 없고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주모에게 말하면 융통해 줄까 생각했으나 눈치를 챈 주모는 그 말이 나오지 못하게 죽는소리를 했다. 찬수의 기술을 이용해 화투판마다 고리를 뜯던 기막힌 사업파트너이고 악어와 악어새 같은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할 땐 언제고. 돈을 좀 융통해 달라고 하니 딱 잡아떼는 주모다. 선배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들은 알콩달콩 깨를 볶았다. 여느 부부처럼 마트에 안줏거리도 사러 가고 장날 장도 보러 가고 행복했다. 주모는 찬수가 좋아하는 삼겹살도 구워주고 잘 챙겨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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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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