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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보낸 편지

[ 에세이 ] < 내가 나에게 위로를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199*년 10월 29일 밤이었어. 배가 점점 아파오는 간격이 점점 빨라졌지.

화성온천에서 목욕하고 몸과 맘을 정결하게 닦아냈어.

새로 태어날 널 만나기 위한 설렘으로 내 마음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지.

밤이 되어 자려고 누웠는데 배가 자주 아파왔어. 널 만날 때 가져가려고 준비한 가방을

가지고 저녁 8시에 향남 **산부인과 병원에 가서 입원했지. 그날 밤은 바람이 무척 불었어.

귀한 아이가 태어날 징조인 걸까, 세찬 바람이 우박과 싸라기눈을 데리고 왔거든.


네가 내게 속삭였어. "엄마 나 빨리 밖에 나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님이 내게 말했지, 아이와 만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더군.

밤새 배가 아파오고 두려웠어.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너와 만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지.


다음 날 아침 7시였어. 너를 감싸고 뛰놀던 강둑이 무너지고 말았어.

넌 물이 없는 빈 강에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힘을 쓰기 시작했지.

의사 선생님이 아이는 밖으로로 나오고 싶은데 오랫동안 걸어둔 대문 빗장이

빨리 열리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는 선택했어. 네가 고생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두툼한 담장을 열고 널 맞이할 대문을 만들어 달랬어.

15분 후, 넌 엄마를 만나러 대문을 통해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엄마는 두툼한

담장을 메꾸느라 깊은 잠을 빠져 있었지.


솟구치는 엄마의 사랑이 넘쳐서 네가 가고 없는 강둑에 났던 대문을 막느라 붉게

물들었고 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 아마도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던 같아.

네가 나온 대문이 다시 봉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어. 아무도 대문을 열지 못하도록

빗장을 단단히 치느라 의사 선생님은 땀범벅이 되고 엄마는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떠지지 않은 눈을 겨우 떴어.

강보에 쌓은 예쁜 널 보기 위해, 옆으로 몸을 돌리려고 했는데 할 수 없었어.

그때 형이 엄마의 몸을 옆으로 밀어줘서 뽀얗고 귀여운 네 얼굴을 볼 수 있었어.

막은 대문의 상처가 아팠지만 엄마는 아주 행복했어.



천재소년은 뭐든 만지고 느끼기 시작했어. 대여섯 살부터 종이접기를 시작했지.

천 마리 종이학을 만들고 로봇을 맞추고 변신시키고 종이 차와 종이 인형도 아주 잘 접었어.

초등학교 때는 퍼즐을 맞추고 건담을 여러 개나 맞췄어. 뭐든 하고야 마는 집념의 아들이었지.


넌 중학생이 되고부터 샤프로 그림을 그리길 좋아했어. 엄마와 아빠, 형도 똑같이 잘 그렸어,

풍경화도 잘 그리고 나무도 그리고 뭐든 그리기를 좋아했어. 무엇이든 척척 잘 그려냈어.

뭐든 그리고 만들면 행복하다는 것을, 고등학교 갈 때야 알게 되었던 거야.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기숙하며 미술반 활동도 열심히 했어. 드디어 네가 원하던 미술대학

조소과에 입학하여 출발은 다른 아이들보다 늦었지만 기본부터 다지며 원하던 자격증 몇 가지

취득하고 영어가 능통해야 가는 카투사에 합격했지.


계백장군의 혼이 서린 황산벌, 연무대에서 너의 마음과 몸을 갈고닦고 기를 모으고 수련했지.

30일을 채우고 10일만 지나면 드디어 너와 만난다고 하는 그 시간에 이 편지를 네게 보냈지.

10일 후 너와 몇 시간 상봉하고 다음다음 날 넌 의정부 KTA에 입성하여 체력단련으로 몸을 굳히고

19개월을 한국을 대표하는 멋진 사나이가 되어 한국대표 외교관 군인이 된다고 해서 기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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