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라비아 서쪽 홍해를 접하고 있는 대도시 제다는 전설에 따르면 이브의 도시다. 아랍어에서 ‘제드’는 할아버지이고, 제드의 여성형 ‘제다’는 할머니를 의미한다. 인류의 큰 할머니, 누구겠는가? 당연히 우리는 이브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제다는 사우디에서 비교적 오래된 도시다. 사우디 아라비아 반도 내부의 물산과 예멘에서 온 물건들이 홍해를 통해 이집트 및 그 너머 지중해로 나가기 위한 출발 항구나 정박 항구의 역할을 오래전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제다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동쪽에 위치한 메카에서 이슬람이 발생하고부터는 성지 순례의 출발점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과거 야포)가 기독교의 성지순례를 위한 출발점이라면, 제다는 이슬람 성지 순례의 출발점이 된다. 메카는 공항이 따로 없어서 대부분의 외국 순례객들은 제다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성지 순례객들은 주로 제다에서 단체 버스를 이용하여 메카까지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고속철도가 제다, 메카, 마디나를 잇고 있어서, 고속철도를 통해 메카로 진입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제다에서는 흰 천으로 몸을 덮고, 슬리퍼를 신은 전형적인 순례객들을 가장 많이, 연중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다로 통하는 모든 비행 편은 순례객들로 꽉 찬다. 하지 기간이 되면 제다의 호텔 가격은 2-3배 상승한다. 그리고 제다에는 별도의 하지 터미널이 있어서, 하지 기간 중에 증편된 비행기들과, 전세기들은 하지 터미널에서 입국 수속을 따로 치르게 된다.
전 세계의 무슬림들이 모여들고, 정착하면서, 제다는 오래전부터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해 왔다. 제다가 포함된 서부 지방은 헤자즈 지역이라고 하며, 1차 세계 대전 중, 리야드의 SAUD 가문이 사우디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기 이전까지 독립국가였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헤자즈 지방은 선지자 무함마드의 가문인 ‘하심’ 가문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는데,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의 시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아라비아 반도에서, 리야드(사우디 아라비아 중부)가 본거지인 SAUD가문과 제다(서부)가 본거지인 하심 가문에 무기와 돈을 동시에 지원하며 이용하였다. 당시 영국의 중동정책은 두 가지 면에서 실수를 범했는데, 첫째는 SAUD가문의 야심을 얕잡아 본 것이고, 둘째는 헤자즈 지방의 하심 가문을 너무나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하심 가문은 영국과 더불어 보다 적극적으로 시리아 공략을 해갔지만, 프랑스 등 열강 간의 이해관계, 시리아 현지 세력의 외면 등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사이 영국의 또 다른 중동 정책의 축인 사우드 가문에서는 시리아 원정으로 비어있던 헤자즈 지방을 점령해버린다. 오스만 투르크 해체 후, 전체 이슬람의 패권을 찾고자 했던 헤자즈의 하심 가문은 돌아갈 곳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불쌍한 하심 가문을 위해 영국이 선물처럼 제시한 곳이 현재 요르단이다. 하심 가문은 그들의 땅 헤자즈에 돌아오지 못하고, 요르단에 정착하여 왕이 되는데, 현재 요르단 국왕의 아버지가 영국을 도와 시리아로 진격했던 인물이다.
그런 역사적인 연유에서인지, 통합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지금까지도 제다를 포함하는 헤자즈 지방은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통합 초기, 심지어 10년 전만 해도, 세계적인 기업의 사우디 아라비아 지점은 제다에 있었고, 부와 생활수준도 리야드, 담맘(동부의 중심도시) 등 타 도시를 압도했고, 상대적으로 외국인들이 많아서 비교적 자유로운 도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의 리야드에 대한 투자가 강화되고, 국가 전체적인 개방과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인구도 리야드가 제다에 비해 월등하다. 그리고 모든 투자와 부는 리야드로 집중되고, 제다는 계속 소외되고 있다. 실제로 리야드는 곳곳이 공사 현장이고, 그 속도 역시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데 비해, 제다의 건물들은 공사가 중단되었거나 몇 년째 계속 공사 중이다. 예를 들어, 완성되었다면 세계 최고층 빌딩이 되었을 ‘1마일 타워’는 벌써 몇 년째 50층에서 공사가 중단되어, 제다의 흉물스러운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다. 최근 사우디 정부에 의해, 홍해 관광개발 프로젝트, 니움 프로젝트 등 거대한 제다 주변, 홍해 개발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는데, 그 거대 토목 프로젝트가 정말 완성되고, 성공하여, 노인들의 머릿속에만 있는 과거의 세계적인 도시로서의 제다로 다시 우뚝 서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