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메카에 대하여

by YT

‘정보산업의 메카’, ‘방송 영상 사업의 새로운 메카가 될 OO 방송 영상 밸리’ – 우리는 무엇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사우디 아라비아 서쪽, 바위 산에 둘러싸인 메카(MECCA)를 비유로 사용한다. 어떻게 이런 관용적인 어구가 생기게 된 것일까? 내 생각엔 무슬림들의 독특한 기도 형태와 별난 단체 성지 순례의 전통에 기인한 듯하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무슬림의 기도 방향(끼블라)은 메카를 향한다. 또, 무슬림에게 하지 기간의 순례는 평생의 영광으로 하지 때가 되면 매년 몇 백만 명의 순례객들이 동시에 메카를 찾는다. 이런 한 방향 기도의 이미지와 유별난 성지순례의 전통은 아마도 서양인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을 것이고, 이것이 위와 같은 관용구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가 된 듯하다.


무슬림 제1의 성지, 하지 기간(이슬람 희생제 3일 전부터 희생제 기간을 포함하는 약 일주일 정도)의 성지순례는 무슬림이라면 평생 꼭 한번 하길 바라는 인생 최고의 이벤트다. 하지를 다녀온 사람은 자신의 이름에 ‘하지’라는 단어를 새롭게 넣을 정도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터키의 유명한 로쿰(Turkish Delight) 브랜드 중 ‘하지 바바’라는 것이 있는데, 아마 하지 기간 중 메카에 성지순례를 다녀온 할아버지가 만든 브랜드일 것이다. 사우디 정부에서는 이 일주일의 이벤트를 위해 ‘하지청’이라는 관청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이 하지청에서는 각 국가별로 하지 참가 쿼터를 정하고, 비자, 출입국 통제, 전체적인 하지 행사를 총괄한다.

성지 순례 때는 출발하는 공항에서부터 이음새가 없는 긴 천을 몸에 둘둘 두르고 비행기를 탄다. 일반 복장을 입은 사람이라도 신성한 GATE, 미카트(성지 권역의 경계를 표시한 것으로, 사우디아 항공 비행기는 이 권역을 지나기 전 기내 방송을 통해 곧 미카트에 진입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를 지나기 전, 비행기 화장실에서 앞의 순례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순례객의 전형적인 모습은 긴 흰 수건으로 몸을 둘둘 감싸고, 슬리퍼를 신고, 손에는 하얀 물통을 들고 있는 것이다.

순례객들은 하람에 도착하여 특정한 의식을 따르는데, 먼저 크던 작던 카바 주위를 반시계 반향으로 일곱 바퀴 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발자국’이 있는 곳에서 두 번 기도하고, ZAM ZAM에서 성수를 마신다. 하갈(아브라함의 아내)이 이스마엘을 위해 물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걷거나 뛰어다닐 때 어린 이스마엘이 기어서 돌아다니다가 발을 구르자 그곳에서 샘물이 터졌다는 전설이 있고, 그 샘이 바로 ZAM ZAM이다. 순례객들이 물통을 들고 있는 것은 순례의 선물로 친척과 이웃들에게 성수를 나눠주기 위한 것이다. 요즘은 제다 공항에서 ZAM ZAM 성수를 1인당 2팩 -10리터 – 한도에서 살 수 있다. 그 이후엔 하갈이 물을 찾아 한대로 하람 안에 있는 특정 구간을 걷다가 뛰기를 일곱 번 왕복한다. 그 이후 미나 평원에서 야영을 하고, 그다음 날은 아라파트 산에서 하루 종일 기도를 한다. 그다음 날에는 악마의 벽에 돌을 던지는 의식으로 순례를 마감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성지 순례의 프로세스이다.


성지순례객들이 일곱 바퀴의 원을 도는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카바다. 카바는 검은 천으로 덮인 육면체의 공간으로, 덮개는 어느 정도가 지나면 새 것으로 교체된다. 시리아나 이란을 여행하며 과거 카바를 덮었던 덮개가 박물관에 전시된 것을 많이 보았었다. 나는 처음에 카바를 유대인의 지성소(하나님의 집, 하나님이 머무는 곳) 같은 곳으로 이해하였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카바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비어있을 뿐이다. 다만 동쪽 모서리에 ‘알 아스와드’(검은색이란 뜻)라는 운석이 있는데, 순례객들은 이 운석을 만지고 입을 맞춘다. 이 운석은 이슬람 이전부터 메카 지역 토착민들에 의해 하늘에서 온 것으로 숭배되던 것이다. 암튼 카바는 솔로몬이 지었던 유대인의 하나님이 계신 곳이 아니다. 어쩌면 그리스를 여행하며 보았던 옴파로스(세상의 배꼽) 정도의 느낌인데..., 그저 기도를 위한 중심일 뿐이다.(꾸란에 의하면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카바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슬람의 제1의 성지는 메카이지만, 제2의 성지는 메카에서 북쪽으로 4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의 마디나이다. 마디나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 피신했던 곳으로 사우디에서 이곳 역시 무슬림이 아니면 방문할 수 없다. 보통 사우디의 TV 채널 1번은 메카의 하람을 24시간 비춰주는 실시간 방송이고, 2번은 마디나 모스크를 비춰주는 실시간 방송이 꾸란의 낭송과 같이 하루 종일 나온다. 제3의 성지는 이슬람 초기 기도 방향이던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이 무슬림의 성지가 된 것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바위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으로 자신의 아들 이삭을 재물로 바친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 바위는 황금 돔을 가진 바위의 돔 사원으로 무슬림과 유대인, 기독교의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다.

메카는 사우디 아라비아 서쪽 산맥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비록 불에 검게 그을린 듯한 돌산이지만, 메카 도시의 주변은 상당히 높은 산으로 가림막이 쳐진 느낌이다. 메카와 마디나는 무슬림이 아닌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메카 너머의 도시로 가려면 무슬림이 아닌 사람은 메카 외곽을 돌아가야 한다. 도로 교통표지에도 무슬림은 직진, NON 무슬림은 DETOUR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개인적으로 한번 길을 잘못 들어 메카에 차를 가지고 들어간 적이 있는데, 메카는 여느 아랍의 도시와 같이 빌딩과 아파트, 특히 호텔이 많은 도시였다. 물론 성지 순례의 핵심인 하람에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keyword
이전 27화민족의 역사, 땅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