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우리는 조사를 나의 가설을 확정하고 검증하는 역할로 사용하고 있다. 진짜 현상에 대한 객관적 포착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 되어버렸다. 조사는 머릿속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상상은 더 이상 부유하지 않고, 현실로 내려와 사실이 되고, 실체가 된다. 의뢰인의 가설은 조사 회사의 아첨하는 논리와 치밀한 접대의 언어로 실체가 된다. 조사 결과를 받아본, 거의 모든 조사 의뢰인은 말한다. “거봐! 내 말이 맞지!”
우리는 이제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논리로 조사의 결과를 프레젠테이션에 삽입한다. 삽입된 조사 결과는 숫자가 주는 힘을 가지고 청중을 휘어잡는다. 조사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는 기본이 되어 버렸다. 조사 회사의 이러한 접대 정신(乙 정신)은 조사 계획부터, 설문지의 구성에서, 실사 후 숫자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도모된다. 어쩌면 조사 회사의 업의 본질이 어느 정도의 허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세상에 돈을 주는 의뢰인의 생각에 반대되는 조사 결과를 내놓을 조사 회사는 없다. 그러므로 태생부터 ‘객관적인 조사’는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조사 회사가 의뢰인의 머릿속을 검증하는 역할만 한다면, 불행하게도 조사 회사는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내 생각과 똑같은 의견을 듣자고, 의뢰인은 계속해서 돈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전히 존재하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현실 속 조사 회사의 기회 요인은 무엇일까? 그들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번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의뢰인의 머릿속이 그리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사는 큰 틀에서는 의뢰인의 생각과 일치하지만, 각론에서는 변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 각론이 의뢰인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뢰인이 생각하지 못한 약간의 변주가 아름다운 것이다. 즉, 이 소소한 변주가 조사회사 업의 본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