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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Mar 15. 2022

6. [독일 레퀴엠]

[알레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이 단편을 쓰기 전 니체의 [선악의 저편](특히 8장, ‘민족과 조국’)을 읽었다. 그리고 불과 십 년 전에 벌어진 2차 세계 대전과 나치즘을 생각했고, 니체의 관점에 기반하여 보르헤스식 나치즘에 대한 해석을 하고자 이 단편을 쓴 것이다. – 이것은 [독일 레퀴엠]의 집필 배경에 대한 나의 상상이다. 이 단편에는 ‘자라투스트라’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니체가 사상적 스승으로 생각했던 쇼펜하우어가 등장하고, 독일 최고의 지성으로 니체 역시 많이 다루었던 괴테가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니체 사상의 핵심 개념인 의지에 대한 강조가 드러나고, 유약한 동정심에 대한 비판이 등장한다. 니체의 이름도 한 곳에서 직접 등장하지만 (내 생각엔) 자신의 의도를 숨기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이 단편은 만약 니체가 나치즘을 직접 마주했다면 어떻게 해석했을까? 하는 가정에 관한 것이다.

니체의 생각은 개인과 집단의 심리 현상과 그것의 계보를 밝히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세세하고 민감한 심리적인 부분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지만, [선악의 저편] 8장에서는 유럽의 민족과 국가들에 대한 분석과 논평을 하고 있다. 니체에게 유럽은 분리와 통합을 반복하는 하나의 유기체이고, 각각의 민족과 국가는 자신의 정서에 맞게 씨를 뿌리는 민족과 토양을 기르는 민족으로 구분된다. 토양을 기르는 민족의 대표는 프랑스이고, 씨를 뿌리는 대표적인 민족은 독일이다.

[독일 레퀴엠]의 유대인 수용소의 부소장인 린데는 제3제국의 패배는 어떤 의미에서 성공이라고 인식한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파괴는 필수적인 것이며, 독일이 그 파괴자이건 그 파괴의 대상이 되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거대한 흐름을 위한 발화를 일으켰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독한 전체주의적 관점으로 행동과 사건은 전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고, 전체의 관점에서 차이는 없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전체도 계속 순환하며 변화한다는 것이고, 개별 국가들은 역할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내용은 많은 부분 니체의 생각과 겹친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 레퀴엠]은 니체가 본 나치즘이다. 그러나 니체가 에너지 같은 꿈틀거리는 내적/외적 의지를 끝까지 밀고 가는 추진력과 믿음을 보여주었다면, 보르헤스는 의지에 운명과 신을 포섭한다. 그래서 그의 생각은 공중에 뜬다. 그래서 그의 세계는 현실적이라기보다 예술적인 환상의 세계가 되고, 둥근 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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