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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오르다

by YT

점심 먹고 남산에 올랐습니다.

진한 배설의 향을 털어버린 은행나무는 노란색으로, 지난봄 형님들과 같이 맞았던 벚나무는 붉고 누렇게 뜬 노인의 얼굴색을 닮아갑니다.

궁을 기준으로 남쪽에 있어 남산이겠지만, 저에겐 남자들의 추억이 있어 남산인 것 같습니다.

불자의 화두가 아닌, 업무의 구상을 들고 산을 올랐지만,

남산 전망대를 오르며 곳곳에 스며있는 형님들과의 緣으로 울적해지다가, 울컥해 버렸습니다.

대만에서 술 드시고 고향 간다고 타이베이 기차역에 발은 안 빠지셨는지,

3,6,9를 하시다 집에 못 들어가진 않으셨는지, 보살펴드리고, 잘라 주어야 하는 제 역할이 없어 더 그리웠습니다.

하산 길 돌아오는 개울 물속에 누가 금붕어를 가져다 놓았다고 말하고 싶고,

검은 스타킹에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옆으로 늘어뜨린 벤치의 여인에 대해 품평도 하고 싶고,

웨딩 촬영하는 못난이 신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침을 꿀꺽 삼키자. 산행의 이미지들이 몸속으로 들어와 깊이 오래 간직해야 할 그리움으로 변합니다.

ㅎㅎㅎ 저 가을 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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