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근하지 않아서 밖에 나갈 일이 없다고 방심했었다. 일기예보에 관심도 갖지 않고 있어서 그렇게 추운 줄도 모르고, 심지어 평소처럼 환기를 위해 베란다 문까지 열어놓았었다. 오후쯤 문을 닫으려 베란다를 나갔더니 추위에 약한 식물들은 이미 얼어서 데친 시금치마냥 힘이 없이 흐물거렸다.
그러고는 온도계를 보니 실내인 베란다에서도 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속상함, 미안함에 식물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맞나?
식물을 키울 자격이 있나?
너무도 속상한 마음에 얼어버린 식물들을 치우지도 못하고
그냥 그대로 둔 채 문을 닫고 들어왔다.
잠시 멍한 채로 있었다.
봄에서 가을까지 쑥쑥 자라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물들!
난 그런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아침에도 보고, 점심에도 보고, 저녁에 또 보았다.
겨울이 되면서 메말라 보이고, 힘이 없는 식물들, 변화 없이 머물러 있는 식물들!
나의 애정도 사랑도 잠시 멈춘 듯 내 마음이 주춤했었다.
그렇게 애정이 식어가고 있었는데 식물까지 얼려 죽이니 마음 한편이 더 쓰렸다.
겨울에 좀 더 내 관심과 세심함이 필요했는데.
이 식물들은 추운 겨울을 잘 버텨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하지만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다. 내가 가장 지양하는 일은 쓸데없는 후회이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더는 얼리지 않도록 신경 쓰고 주의를 기울이자.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도록 사랑을 더 쏟아주고 응원해 주자.
본격적인 겨울이 되기 전에 추위에 약한 식물들은 거실로 들여왔었다. 다행히 동사를 피했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얼어버린 식물들이 대한 미안함을 가시지 않았다.
오랜만에 나의 식물들을 그렸다. 한 잎 한 잎 최대한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리면서 식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각자 조금씩의 변화들이 보였다. 뱅골 고무나무 가지치기 한자리에 새 잎이 돋아나고, 히메 몬스테라는 언제 컸는지 키가 훌쩍 자라 있고, 무늬 몬스테라도 새 잎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