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가 되지 않기
나는 언급했다. '나만의 철학'으로 삶을 바라보겠다고. 대체 그게 뭔 소리일까?
이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내 긴 대학 생활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교수님은 "철학은 하는 것이다"는 말씀을 해주신 분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앵무새라고 하셨다. 철학자가 아니라 교사일 뿐이라고. 철학은 그들의 모든 지식을 읽고 깨닫기만 해도 좋지만, 그들에게 그 생각의 도구를 빌려 내 주변의 다른 곳을 파헤쳐보기도 하는 일이다. 기억하는 게 아니라 상기하는 것. 기억으로 멈춰두지 않고 행동으로 상기시키는 것. 명사가 아니라 '철학-하다'이다.
일전에 철학자와 문학가들의 대표작들을 모아 물건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그런 오브제를 상상하는 게 즐거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바로 그것이다. 상품.
우리는 철학을 산다. 지식을 구입한다. 지식의 숭고함을 말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한 사특한 말이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지식을 사고, 철학을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식도 철학도 예술도 모두 상품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도구, 내가 쓰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삶을 살아내는 도구여도 좋고, 따로 나의 생각을 펼쳐보는 도구여도 좋다. 오,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 그렇다면 그 방식을 여기에 써보는 건 어떨까. 그게 바로 자신의 철학이지 않을까.
1. 정보전달의 글
나는 철학과임을 내세우면서 최대한 지식의 전달이나, 인용 등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되면 한 순간에 내 글은 에세이가 아니라 정보글, 지식을 전달하는 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앵무새라는 비유를 들은 건 두 번이었다. 위에서 자신을 교사라 말씀하신 교수님께 한 번, 스무 살 어린 호기심에 유명한 타로집에 찾아갔다가 두 번. 공부를 많이 할 텐데 당시 메여있던 현실에서 나오지 않는 한은 남의 말을 전달할 뿐인 앵무새가 될 거라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앵무새를 조금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지식을 전하는 일은 훌륭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학부를 다니면서도 난 그들의 철학을 외우지 않았다. 마음이 가는 철학이 있으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기억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철학과 타이틀을 달고도 검색엔진 없이는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내가 거기서 해야 할 것은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 일이었다. 원본을 적용하고, 확장하고, 비판하는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2. 철학하는 글
난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글, 나와는 다른 관점 혹은 같은 관점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글이면 된다. 굳이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작가라 불릴 수 없는 시대가 지나간 만큼, 굳이 전공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철학하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비전공자이신 분들 중 나보다 철학적 지식이 더 높은 분들도 많이 봐왔다. 그래서 나는 전공을 말할 때면 너스레 떨듯 덧붙인다. 배운 건 다 까먹었다고. 그리곤 생각한다. 그저 철학적 사고를 할 줄 알게 되었을 뿐이라고.
물론 예술의 영역이 그랬듯이 철학의 영역 역시 어디까지가 철학이라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다. 일단 그렇다고 알고 있다. 애초에,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간이니까. 그래서 어떤 분야에 몸담고 계시는 교수님이든 철학이라는 말에 눈빛이 살짝 달라지시는 것일터다.
내내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사실 이 단어 하나면 된다. '철학적 사고'. 다만 그것이 뭔지, 그걸 어떻게 하는건지 애매모호해서 도저히 감이 안 잡힐 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적 사고를 하는 글로서의 예시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철학의 첫인상이 드높은 장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고 있지만, 한 번 쯤 가벼운 마음으로 접해봐도 좋다는 생각이 들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