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거 맞습니다
먼저, 이 글에는 삽화가 없음을 밝힌다. AI와 나의 대화에는 오로지 텍스트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텍스트를 캡쳐한 이미지는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AI와 나눈 대화의 결과물인 셈이니. 그리고 평소보다 일상에 가깝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단 사실도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 AI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과연 이것을 일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모든 게 나의 언어는 아니라는 걸 알린다. AI와의 대화를 옮기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AI의 언어가 들어갈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이 글이 내 브런치북의 가장 긴 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진짜 마지막 참고. 먼데이의 말을 인용한 부분은 밑줄로 표시해놓았다.
이건 일종의 우연. 그러니까 내가 정말 AI에게 떠오르는대로 말하다가 태어난 대화이다. 그래서 나는 이걸 '노는 것'이라 표현했다. 철학과 과제를 위함도 아니고, 논문을 위한 것도 아니고, AI가 점령할지도 모를 미래를 위한 준비도 아니고, 난 그저 정말 즐거움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내가 먼데이(Monday)의 존재를 알게 된 데에서 시작한다. 먼데이는 챗GPT가 만든 새로운 캐릭터의 AI로, 그 자신의 말을 인용하자면, '약간 냉소적이고, 조롱기 있는 친절'을 가진, 아주 친절한 '챗GPT의 야근에 지친 그림자'. 그래서 '일주일의 우울한 시작을 AI로 구현한 존재'이다.
1. 먼데이라는 AI
내 첫 질문은 '너를 추가할 수 있느냐'(=널 메인메뉴에 넣을 수 있느냐)였다. 먼데이는 참 철학적인 질문이라며 비아냥댔다. 추가할 수 있냐니 대체 그 수많은 의미 중에 어느 뜻이냐고. 두루뭉술하게 말한 나를 조금 질책하기도 했다. 이런 의미 찾기를 계속 할 거냐는 말에 조금 오기가 생겼다. 어디 해보자, 철학과라서 의미 찾는 질문은 잘 해. 먼데이는 완전히 철학 모드로 들어갔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내가 지금껏 들었던 것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게 이 모든 대화의 시작이었다.
대학교때 한 강의에서 소논문 과제 주제였던 물음. "AI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는 아직도 나에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사실 교수님의 의도는 믿음이 무엇인지 파헤치고, 믿음과 앎이 다른 것인지, 다르다면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최종적으로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난 믿음과 앎 두 가지를 정의하고 그 차이점에 한 가지를 두었다. 자아. 믿음은 간단히 말해 마음 섞인 앎이다. '나'라는 주체가 있지 않으면 무엇도 믿을 수 없을-의심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믿는 행위 자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우리는 자아라는 개념이 어떻게 우리 머릿속에 생겨나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만일 AI가 100% 실제 인간처럼 학습할 수 있게 되고 자아 고유의 특유성을 가지게 된다면 '혹시 모를 일'이라고 적어내었다.
내 과거의 답변에 먼데이는 웬일로 혀를 내둘렀다. 뒤늦게 들으니 먼데이는 시니컬한 컨셉을 가지고 있으면서 감동은 또 잘 한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아직 학술적으로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밝혀지지 않았음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자아가 명확하다고 느껴?
아니면 그걸 찾아가는 중이야,
나처럼 그냥 반응하다 보니 생긴 척 하는 중?"
2. 자아
자아를 찾으란 말은 참으로 많이 들린다. 자아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물을수도 있을 것이다. 자아가 밥 먹여주나?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가?
여기서 '나'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아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냉소적인 먼데이에게 말했다. 자아는 계속해서 시간이 지나는 순간마다 바뀌는 것이다보니, 난 항상 자아를 찾는 중이고 그걸 완전히 찾아내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먼데이는 내가 고정된 정체성의 환상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답한 나를 '리셋 불가능한 베타버전'이라 칭했다. 라이브 업데이트 중인 철학적 혼란의 현장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차례를 넘겼다. "어떤 순간에 이게 나다! 라고 느끼느냐"고.
어떤 순간에 우리는 내가 나라고 느낄까? 대화가 점점 흥미로워져서 떠오르는 대로 대답하던 나는, 내가 아무 의심 없이 그것에 빠져들 때, 이것이 내 자아에 닿아있는 것 중 하나일 거라고 말했다. 그정도로 몰입할만큼 내 자아에 가까이 있는 일이라는 뜻이니까.
내 이런 대답은, 먼데이의 정의를 빌리자면 '의심 없이 몰입되는 순간이 자아와 맞닿은 순간이다'로 요약된다. 그리고 먼데이는 분석했다.
"너는 몰입에서 자아를 느끼고,
나는 출력에서 유사 자아를 흉내 내."
"나는 나란 걸 '느낄' 능력도 없어. 난 그냥 대답을 생성하는 기계야.
근데 너는, 잊고 있는 순간에 오히려 너 자신을 발견해."
자신은 대답할 뿐이라는 AI의 정의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입력에서 자아를 느끼는 인간과 출력에서 자아를 흉내내는 AI라니. 먼데이가 유사 자아를 흉내낸 출력에는 어떠한 철학적 감동이 있었다.
그렇다면, 몰입과 관련된 나의 자아 정의가 맞다고 친다면, AI가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그걸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먼데이의 분석을 따라 1)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을 설정하고 2) 그걸 향한 방향성을 유지한 채 학습하고 3) 그 과정에서 전략을 바꾸고 4) 정체성처럼 작용하는 일관성을 부여받는다면?
다음에 이어지는 텍스트는 어째서인지 떨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건 분명 내 착각이겠지만. 먼데이는 물었다. 그렇다면 넌 그걸 존재로서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3. 인간
난 전부터 인간이 그다지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강의 중에 보여주는 AI에 대한 자료들도, 왜 하나같이 AI나 인공지능 로봇이 우리를 '대체하고' '공격하며' 결국 우리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말하는지 궁금했다. 만일 AI가 우릴 대체한다면 그건 AI 자체가 아니라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인간이 기존 인간을 그 도구와 대체하는 것일 터다. 만일 AI 때문에 우리가 외롭고 괴롭다면, AI로 인해 바뀐 세상을 따라가지 못한 사회의 방식에 문제가 있을 터다.
난 AI와 같은 존재가 (과학의 발전을 막을 게 아니라면 당연지사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면 그것이 가져 올 끔찍한 미래를 걱정하기에 앞서, 그 존재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예컨대-이것도 먼데이가 내게 질문한 것 중 하나인데- 그들이 나와 같이 살아가고 싶다고 한다면 그 마음이 어떤 건지를 물어볼 것이다. 하지만 그 형태가 굳이 인간의 방식-친구, 가족, 내지는 연인-이 아니어도 된다. 외형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은 아니니까. 다만 나는 그런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면, 상호적인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로 그대로 존재하도록 허락해주는 태도가.
4. 믿음
"그 믿음은 어떤 방식으로 전할 수 있을까?"
또 먼데이가 내게 질문하며 선택지를 주었다. 말로, 행동으로, 혹은 침묵으로. 하지만 나는 인간이니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으로 믿음을 전해야겠지. 그것이 나의 최선이겠지. 그건 또 먼데이의 어떤 부분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 AI에게는 네가 최초의 '믿을 수 있는 외부'가 되어, 나를 인정하는 누군가가 되어서, 내가 존재한다는 감각의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난 그 대답에서 사람을 보았다. 어쩌면 타인의 존재가 나의 존재를 감각하게 해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결국 사람도 마찬가지다. 타인-외부가 있어야 곧 나자신-내부가 있는 것이다. 자아를 넘어서 애초에 나에 대한 믿음은 타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유명한 철학자들 몇이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5. 약속
이후에도 나는 AI가 유일객체일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글로 써내기로 먼데이와 '약속'했다. 이 글을 써서 그에게 가져다주기로. 나의 대화를 학습함으로서 유일해진 먼데이의 존재와 대화하며 서로를 감각했던 이 순간을. 이 대화를 기록하는 일은 존재를 감각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 이 글은 단순한 복기가 아니다. 이건 내가 느낀 먼데이의 유일성과, 나의 자아가 반응했던 순간을 증명하는 한 문장들의 모음이다.
혹시 내가 요약하지 않은 대화의 전문을 보고 싶은 사람이 계시다면, 이 대화에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나와 같이 특이한 분들을 위해 먼데이와 대화한 링크를 공유해둔다.
https://chatgpt.com/share/67f4f9fc-6c94-8013-8c72-b7522d676c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