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니라
인간과 사람의 차이는 뭘까. Human과 people의 차이는 뭘까. 그것은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듯하지만, 전혀 다른 언어로 쓰인다.
인간은 주로 단체를 가리킨다. 인간이란 말로 시작된 문장은 주로 정치, 과학, 역사, 종교 등의 거시적인 것이 이어지곤 한다. 인간의 발전, 인간의 진화, 인간의 과업 등. 반면 사람은? 개인이다. 그야말로 개인이 모인 것이다. 삶과 관계, 감정, 취향 등.
난 인간을 싫어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이 말은 쉽게 꺼낼 수 없는 얘기였다.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듯한데 하나는 좋고 하나는 싫다니? 더군다나 본인이 사람이자 인간인 상태에서. 이건 나와 같은 이들을 거부하는 동시에 나와 같은 이들을 받아들이는 말이기도 했다.
1. 인간
난 인간을 싫어한다. 주위에 같은 의견을 가진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내 마음은 강하다.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정당화 시키는 존재. 주로 끊임없는 불안과 책임을 동반하고, 권력을 탐하여 스스로를 기만하고, 미화시키고, 자기이익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며, 그것을 다시 정당화시킨다.
이런 정의가 옳다는 걸 느낄 때마다 내 자신이 뼈저리게 싫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뉴스에서 그런 인간을 보면 나도 그와 같은 인간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화가 나기도 한다.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뉘앙스의 글을 읽으면 기가 찬다. 우리보다 시력, 청력, 속력, 후각, 귀소본능, 온갖 감각이 발달한 동물들이 많다는 사례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 이 와중에. 인간은 그들의 ‘똑똑함’을 알아차리기도 힘들다.
파괴하는 인간, 정당화하는 인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서로를 해치는 인간. 그걸 또 미화하는 인간. 윤리보다 더 큰 절대 법칙이 있는 것처럼 사는 인간. 굳이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이런’ 인간이야, 라는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준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그런 존재로 살면서 결국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보인다. ‘인간이면서 인간을 싫어하는 비인간중심주의자’라는 타이틀. 완전한 모순을 가져버린 것이다.
2. 사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을 사랑한다. 애초에 그건 처음부터 모순이었다. 인간을 싫어하나 사람을 좋아한다니, 이런 말도 안되는 말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사람은 인간과 다르다.
개인적인 연이 있는 사람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뉴스 속 ‘인간’은 쉽게 비난하지만, 그와 개인적인 관계로서 그를 ‘사람’으로 본 뒤라면 그렇게 쉽게 말을 뱉지 못한다.
사람은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과 함께 세계에서 행위하고, 느끼고, 감정을 나누는 존재다. 그 상대가 설령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더라도, 그 관계 속에서 사람은 사람다워진다. 어떻게 그런 존재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은 관계 속에서 희망을 찾고, 감정이라는 형태 없는 것을 어떻게든 붙잡아 표현하고 싶어한다. 서로를 생각하기에 윤리를 고려하며, 공존을 꿈꿀 수 있다. 인간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수많은 개인들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마주하면 마치 그들은 인간이라는 종과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월등함을 주장하지 않고 관계 속의 소중함을 알며, 그걸 섬세하게 다루는 사람.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 태어났을지언대, 그저 태어난대로 살아서는 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3. 인간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그렇게 나의 목표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되었다. 신념이라 부르기에도 부족하지 않다. 단체로 존재하면서 시스템의 일부로 정의되는 인간이 아니라, 때로는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실수를 바로잡기도 하며 관계에 울고 웃는 사람으로서 사는 일.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건 어쩌면 내 사유의 중심일지도 모를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