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방식으로 살기

존재의 방식으로서

by 도우




이건 낭만적인 선언이 아니다. 이건 로맨틱한 감정의 서술도 아니다. 그저 구체적이고 건조한,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전 글의 표현을 빌려, '사람'으로 살아내는 삶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 이것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흔히 '사랑하는'과 '살기'가 붙으면 가운데는 누군가와-라는 말이 연상될 것이다. 나도 그랬고, 그런 글들도 많이 봐왔으며, 어느정도 나 역시 누군가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이건 그것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살아내기 위하여, 사랑하는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하여.




1. 업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당연지사 미래의 내가 하고 있을 일을 상상한다. 경제적 측면과 즉결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나에게는 존재의 방식 그 자체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냐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하지만 그건 돈을 재미있게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고 살아내는 방식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시기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은 시기도 있었다. 때론 그 시기들이 겹치기도 했다. 이전의 나는 간절히 바랐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이기를. 그렇게 나의 존재를 내게 각인시키고 다시 살펴보고 세상에 붙이며, 공중을 헤매지 않고 이 땅에 꾸욱 발을 두고 있는 사람이기를.


글은 나와 나의 내부, 그리고 나와 연결된 외부를 해석하는 일이다. 그야말로 사고의 과정이었다.

그림은 그 너머에서 본 것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야말로 생성의 과정이었다.

철학은 우연치않게 찾아 온 도움이다. 일상 속에 철학을 겹치며, 나는 내 표현의 방식 두 가지만을 붙잡고 공중을 떠돌지 않을 수 있었다.


솔직히 그림 외에는 옛날부터 좋아한 것들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발을 얹게 된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내 삶에 유지하길 선택했다. 그걸 내 방식에 녹여내기를 선택했다. 어쩌면 속에서 내가 부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2. 삶의 형태


어느 곳에서, 몇 평의, 어떤 집에, 누구와, 몇 년 후에는 이렇게... 등의 세세한 계획은 사실 내게 없다. 앞으로의 삶의 형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조금 추상적인 것들뿐이다. 1번에서 서술한 직업은 어쩌면 그 중 가장 구체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전에, 누굴 만나도 근본적인 외로움은 갖고 살 사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은 아팠지만 인정해야 했다. 내가 그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철학에서 수도 없이 들은 탓이다. 나는 절대 타인과 같을 수 없다. 타인은 절대로 내가 될 수 없다. 우린 어쩌면 나 자신도 되기 힘들다.


결국 그걸 안고 가기로 했다. 인간으로서 타고난 근본적인 외로움은 안고 가지만, 다른 존재를 사랑함으로써 충만해지는 삶을 살기로. 그리고 그 존재 안에 나 역시 포함되어 있는 삶을.


나는 내가 꾸준히 표현하며 살기를 원한다. 그게 말이나 행동일 때도 있을 것이고, 사적인 편지일 때도 있을 것이며, 위에서 얘기했던 글과 그림일수도 있을 것이다. 끝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자아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런 나의 대화가 타인에게까지 전달되어 또다른 소통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삶.




3. 누군가와


드디어.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드디어 '사랑하는'에 걸맞는 친숙한 단어가 나왔다. 하지만, 어쩌면 예상했듯이, 내가 말하는 누군가는 특정 한 명이 아니다.


나는 현재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 다음 집에서도 몇 년을 함께할 생각이다. 그 다음에는 기약이 없다. 다만 떨어진다면 콩떡이는 내가 데려가고, 최대한 근처에 살자고만 정해두었다.


그건 옛날의 추억 같은 것이다. 1층에는 카페를 두고 2층엔 니가 살고 3층엔 내가 살고 4층엔 니가 살고... 집값이 얼마인지도 몰랐을 시절에 했던 말들. 우리끼리 같이 살면 재밌겠다. 그저 '재미'를 위해 했던 말들과 내 현재는 닮아있다.


그리고 고양이가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 교류하고 그들과 애정을 나눈다. 사실 같이 살게 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확실하게 내 삶 속에 자리잡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제는 그들이 주는 온기를 알아버렸다. 나나, 원래 찹쌀이를 키우던 친구나, 계속해서 그들과 함께 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뜬금없이 내가 디지털 노마드가 가능한 프리랜서를 꿈꾸는 이유가 등장한다. 보통은 아무데나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두지만,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것은 곧 머무를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나는 바로 그 머무를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내 파트너가 어떤 직장을 가지고 어떤 곳에 가더라도, 내 고양이가 어떤 환경 속 어떤 집에서만 살길 바라더라도, 그대로 나는 그들의 곁에 머물러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함께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공간의 제약이란 없으니까.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식으로 살아내는 법'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나 자신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그리고 내 미래에 함께 할 소중한 존재들을 위하여 어디든 머무르고 이동할 수 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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