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범죄자와 엮여버려 이젠 잃어버린, 오래된 노래의 한 구절이다. 야속하게도 노래는 좋아서 가끔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곤 한다. 이 부분이 유독 착 달라붙었던 걸 보면 아무래도 결국 이런 비슷한 상황에 놓일 예정이었나 보다. 첫째 고양이 찹쌀이가 우리의 유일한 고양이였던 때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간혹 이렇게 작은 순간 하나가 불현듯 떠오를 때, 그 순간이 하필 이때 떠올랐다는 점에 나는 이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생각되곤 한다. 지금과 너무 일치하는 노래 한 구절. 그리고 내가 계속해서 무의식 속에 품어뒀던 말. 그들의 생이 우리보다 짧은 건 당연한 사실이라, 우리는 반드시 언젠가 그들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것이다.
1. 예견된 이별
반려동물과 거리가 먼 어머니는 내가 이렇게 된 걸 신기해하신다. 그래서 한 번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자식 먼저 보내는 게 가장 힘든 일인데, 어떻게 먼저 갈 걸 알면서 키우느냐고. 사실 내가 이전에 키울 생각을 미루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예견된 이별. 분명 나는 그것에 속절없이 지고 말 테니까. 슬픔을 당해낼 길이 없던 그 당시에는 그 상상 속 이별이 너무나 무겁기만 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키운다면 내가 훨씬 나이가 들었을 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실제로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기 전까지는 감도 못 잡고 있었다. 어떻게 키우느냐는 질문을 그때의 내가 받았다면, 그만큼 사랑하니까 그러는 거지, 라 말은 하면서 내가 겪어본 일은 아니니 그 이상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론 그러게 말이야, 하고 긍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대단하지 그 사람들은, 하고 나도 모르게 그들을 타자화 시켰을 수도 있겠다. 아니 사실 내가 키우질 않고 있었으니 타자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난 확실히 비반려인이었다.
아직 같이 살기 전, 친구가 고양이 사진을 막 보내줘도 그렇게까지 실감이 나진 않았다. 간접경험이니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그저 그 애가 너무 귀여울 뿐이었고, 귀여움에 화답했을 뿐이었고, 그저,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걸 알아, 친구에 대한 슬픔과 걱정이 반씩 들었을 뿐이다.
2. 그럼에도 불고하고
같이 살면서 그들을 마주하고서야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루, 이틀, 사흘을 보고 나니 그제야 그것이 눈에 보였다. 가장 옆에서 그들을 보니, 그 유대감과 사랑과 관계가 그렇게 깊을 수 없었다.
친구에게는 무려 (당시에는) 7년이라는 세월의 관계가 있었다. 그 누구도 따라잡거나 들어갈 수 없는 높디높은 그들만의 영역. 그리고 그 안에 꽉 들어찬, 막연하게 좋은 감정. 서로에 대한 호의와 믿음. 그 누구도 널 알면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을 거야. 고작 몇 달밖에 보지 않은 나로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관계고, 그것이 사랑이다. 예견된 이별 따위가 그 속에 낄 틈은 없다. 그것과 저울질하기엔 사랑이 터무니없이 크다. 내 생명을 나눠서라도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은 존재에게 무엇을 비할까.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것을 알아도 너를 사랑했던 기억은 그보다 거대하니, 그것이 만남을 막을 수는 없다. 먼저 갈 것을 알면서 어떻게 키우느냐고. 그 질문에는 의미가 없다. 그걸 알고 있는 누구든 그 아이-아이들-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내 오래된 흥얼거림은 제자리를 찾았다. 그것이 운명인지 우연인지 나는 모르지만, 내가 의미를 두었으니 나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겠다. 그제야 나는 뒷가사까지 흥얼거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