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의 양심고백

동물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by 도우




지금 나는 두 마리의 고양이와 살고 있다. 이미 집사인 친구와 같이 살게 되면서 '어쩌다 집사'가 된 거지만, 다른 한 마리는 혹여 우리가 따로 산다고 했을 때 내가 데려갈 생각이다. 이제 나는 집사 되기를 선택했다.


그럼 이쯤에서 해보는 양심고백. 사실 나는 고양이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강아지냐 고양이냐 물으면 둘 다 귀엽다고 했었던 것 같고, 전에 말했듯 고양이보단 고슴도치나 다람쥐류를 좋아했다. 아니 모두 때려치우고, 사실 그렇게 안달을 할 정도로 동물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귀여운 것으로 힐링할 때나 찾았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에 사는 줄도 몰랐던 길고양이가 그렇게 눈에 들어오더란다.




1. 그림 그리며 위로받기


어느샌가 난 동물만을 그렸다. 인스타툰처럼 사람이 등장해야 하는 것 빼곤, 동식물을 주로 그린 지 한 4년째 될 것이다. 그즈음 사귄 내 친구들은 내가 사람(이라기보단 '인간')을 극도로 싫어해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반쯤은 인정하지만, 그렇다 치기엔 인간에 관한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


대학원처럼 그림을 죽어라 그려야 할 때는, 무조건 동물을 그렸다. 내 작품을 SNS에 올릴 때에도 그랬다. 그건 일종의 자기 위로였다. 그리면서 참고할 동물을 보고 행복해하고, 내가 그린 그림의 동물이 귀여운 것을 보고 다시 힐링하는, 자체 제작 힐링 코스. 물론 그 이상으로 잘 그리고 싶어서 동물 크로키도 해보았지만 역시 나 자신인 인간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에 그렸던 그림들


사실 동물을 좇게 되는 건 당연했다. 귀여우니까! 하지만 난 그전에는 이렇게까지 동물만 그릴만큼 좋아하지 않았다. 분명 사람을 더 많이 그렸다. 그런데 왜? 나는 더 생각해야 했다.





2. 타인을 품을 공간


솔직히 처음에는 의심병이 도졌다. 주변에서 좋아하니까, 동물 그림이 인기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냐? 하지만 내가 정말로 힘들 때 동물을 찾으며 그리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의심은 바로 지워져 버렸다. 나는 정말로 동물을 그릴 때 안정을 느꼈다. 그리는 도중에도 좋았고, 그건 확실히 나의 인식을 넓혀주었다. 이 작은 생명체들이 각각 어디서 잘 살아가는지. 그 관심은 동물을 넘어 식물에게도 영향을 끼쳐, 대학원 시절은 내내 그런 그림과 글을 썼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히 드러나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고는 못하겠지만.


의심이 지워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게 나의 본모습이다.

내가 이전에 동물까지 눈을 뻗칠 수 없었던 것은 나를 담는 데도 바쁜 하루를 살았기 때문이었다. 내 문제를 해결하긴커녕 들고 다니는 것마저 벅차서, 내 삶과 머릿속에는 그것밖에 없었다. 즉 다른 것, 타인은 커녕 사람이 아닌 것을 품을 여유도 없이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씩 우울증이 나으면서 남에게 기꺼이 쓸 힘이 돌기 시작하니, 다른 데에도 눈을 돌리고 그들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넓어지기 시작함에 따라 내 사고도 넓어졌다. 혹시나 우울증이니 불면증이니 아무것도 겪지 않았다면, 본래의 내가 가졌었을지도 모를 특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시야가 탁 트이는 듯이 기분이 좋았다.



좋았던 기분은 잠시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다른 사람의 형상을 빌려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한 나의 모습을 조금 슬퍼했다. 아무것도 겪지 않았다면 나는 훨씬 일찍이 이런 세상을 눈에 담고 그것을 그리고 글을 썼겠구나.

하지만 상상 속의 나는 다른 사람에게 금세 대답했다. 지금의 모습을 이 나이에 찾다니 아주 멋진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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