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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ustwons Jun 15. 2024

175. 엄마의 슬픔에 잠긴 눈동자

[책 속에 생각을 담다]

175. 엄마의 슬픔에 잠긴 눈동자

   

   이젠 황혼을 바라보는 세월……. 하나 둘 소장한 물건들을 풀어주는 생활 속에서 놀라운 오래된 만화책, 『짠·발 짠』, 저자 김정파의 글과 그림이다. 찍어지고, 발해지고, 삭아졌다. 

  그때, 중학생 시절에 보수동 책방골목길에서 발견한 장발장의 만화책이었다. 그는 배고픈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 잡혀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어쩜 나의 모습을 보는 듯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등록금을 못내 학교를 쫓겨나서 거리를 헤매던 나는 하루에 한 끼조차 먹지 못한 허기진 몸을 이끌고 걸어가던 중에 내 눈에 띈 헌책인 장발장! 붕어빵으로 끼니를 채울 돈을 선 듯 내고 사고 말았다. 그러나 장발장 만화책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프랑스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가 쓴 『레 미제라불』 [Les Miserables]이란 소설책을 한국에서는 《장발장》이라고 소개되었던 것이다. 가석방된 장발장은 노부인의 도움으로 지붕이 낮은 작은 집으로 찾아갔다. 즉 나이 많은 목사의 집이었다. 거기서 묵게 된 장발장은 은 접시를 보는 순간 깊은 밤에 몰래 훔쳐 빠져나가다 경찰에 잡혀 되돌아왔지만, 목사는 은촛대는 왜 안 가져갔냐며 훔친 것이 아니라 준거라고 말하자 장발장은 크게 뉘우치고 평생을 나이 많은 미리엘 목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면서 성실하게 살아오면서 나중에는 시장이 되었다. 

  어느 날, 장발장은 자신이 세운 자혜병원에서 환자로 있는 가련한 여직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의 사정을 들은 장발장은 자신의 공장인 구술공장에서 쫓겨난 사실과 여관에 맡겨둔 어린 딸에 대한 사정을 들었으나 그녀는 자신의 딸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숨지고 말았다. 장발장은 그녀의 부탁을 잊지 않고 그 여관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딸 코제트는 여관에서 하녀처럼 지내는 모습을 장발장은 보고서 값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 코제트를 데리고 갈 수가 있었다. 이처럼 가련한 코제트가 내 마음에 크게 자리를 잡고 말았다. 온갖 학대와 멸시와 고된 일 속에서도 자신을 데려갈 엄마를 그리워하며 견뎌온 코제트에게서 나의 힘든 학창 시절에서 위로가 되었었다. 어린 마음에 코제트 그녀는 나의 꿈이 되고, 나의 벗이 되었다.    

      무척 어둠이 짙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코제트는 문밖에 나와 두 손으로 눈물을 씻고는 파르르 떨고 있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는 슬픔에 잠긴 엄마의 눈동자처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나는 너무나 이해할 수가 있었다. 냉방에서 차가운 이불속을 두껍게 옷을 껴입은 채로 들어가 자야 했었던 나도 역시 그러했으니깐 말이다. 추운 겨울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 햇볕에 몸을 녹이며 읽었던 만화책 ‘장발장’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정말 가난이란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시간의 흐름으로 떠내려가는 그런 심정이었다. 내일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고, 내일이란 전혀 남의 일처럼, 이방인처럼 여겨질 뿐, 허기지고 배고픔조차 의미가 없이 어둠 속으로 묻히는 몸으로 차가운 이불에서 체온으로 몸을 녹이는 긴 밤이었었다. 가끔은 허기를 달려고 일부로 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풍겨오는 음식냄새로 허기를 채우는 것만도 얼마나 행복해했는지도 모른다.      

  장발장은 배고픈 조카를 위해 윈도에 있는 빵을 유리를 깨고 훔쳐가다가 경찰에 잡힌 것이었다. 감옥에 있는 그는 배고픔에 있는 조카를 잊지 못해 탈옥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옥살이만 늘어났던 것이었다. 그렇게 긴 옥살이 중에 가석방으로 감옥을 나온 그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맞이하는 듯했으며, 또한 그를 외면하고 경계하는 사람들 속에 외로이 걸어야만 했었다. 

  깊은 밤 한 노파에 의해 그를 받아줄 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간 곳이 바로 미리엘 목사의 사택이었다. 폭신한 침실에서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뒤척이다가 식탁에서 보았던 은촛대와 은 접시를 잊지 못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은 접시를 봇짐에 담아 슬그머니 사택을 빠져나왔다. 깊은 밤 야경을 순찰하던 경찰에 잡혀 다시 사택으로 돌아와 목사에게 훔친 사실을 말하자 목사는 한술 더 떠서 은촛대를 가져와 그에게 전하며 훔친 것이 아니라 준 것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그는 자신을 받아주고 인정해 준 미리엘 목사의 친절에 깊은 감동과 회심을 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목사님이 준 은접시와 은촛대를 평생 간직하며 정직하게 선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는 옥에서 배운 유리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구술공장을 운영하여 부자가 되었고, 그의 성실한 삶을 인정받아 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장에서 쫓겨난 여인의 사연을 알고 그녀를 복직시켜 주었으나 그녀는 허약한 몸으로 인해 병원에서 죽고 만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부탁으로 딸 코제트를 보살펴달라고 부탁을 하여 그는  코제트가 있는 여관으로 찾아간다. 그는 몸값을 주고 코제트를 데려와 키우게 된다. 그는 코제트를 보는 순간 배고픔에 있던 조카를 잊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많았지만 코제트를 어엿한 숙녀로 키워 멋진 청년과 결혼을 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깊은 밤 차가운 겨울밤에 하늘에는 유난히 별들이 총총하였다. 코제트는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심정을 알지 못했어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슬픔에 잠긴 눈동자를 생각하였다고 한다. 코제트는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진실한 마음은 서로 통하는 법이다. 여관에 맡기고 도시로 가서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를 코제트는 알고 있었기에 여관에서의 힘든 생활을 잘 견디어 왔을 것이다. 이처럼 모녀간에 진실한 사랑은 서로의 믿음을 깊어지게 하였을 것이다. 이 또한 장발장에게서도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코제트는 어엿한 숙녀로 성장할 수가 있었던 것일 게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진실함은 건강한 인격을 형성하도록 이끌어준다.  그래서 가난해 있어서도 장발장의 이야기는 진실한 마음으로 위로의 힘이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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