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밥알 한톨이의 여행
[맴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편]
3. 밥알 한톨이의 여행
동찬은 무더위를 피해 일찍이 느티나무 아래로 와 정자마루에 걸터앉았다. 길게 누러진 느티나무 가지들이 슬렁슬렁 흔들어내니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마루에 누이며 동찬은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때에 맴 할아버지가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는 시원한 모시옷을 입고서 느티나무 정자로 오셨다. 맴 할아버지는 마루에 벌러덩 누워있는 동찬을 바라보시고는 헛기침을 하며 동찬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동찬은 잠이 들었는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맴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동찬이 얼굴을 한참 바라보시더니만 담뱃대의 불을 끄시고는 바위에 탁탁 털어내시고서 손으로 한번 쓱 닦아내더니만 동찬의 이마를 톡 때렸다.
“아얏! 누구야?”
“나다~”
동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루 옆에 똑바로 섰다. 그리고는 동찬은 허리를 구심도로 구부리고는 맴 할아버지께 큰 절을 하였다.
“맴 할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허허, 울 똥찬이 제법인데……. 예절은 잊지 않았구먼,”
“예이~ 어찌 어르신을 몰라 뵙겠습니까? 우리 동네의 가장 큰 어른이신 줄 아옵나이다.”
“허허, 고놈~ 말 잘하는구먼. 그래 아침식사는 하고 왔는가?”
“당연하시옵니다. 거뜬히 먹고 왔사옵니다.”
맴 할아버지는 동찬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시더니, 너털웃음을 하시더니 긴 담뱃대로 동찬의 머리를 콕 치셨다.
“아이코, 어찌 이러십니까? 어르신도 진지 드셨사옵니까?”
“네 이놈! 귀한 밥알 한 톨을 얼굴에 붙여왔단 말이냐?”
“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얼굴에 밥알 한 톨이라니요?”
“몰라서 묻는 게야?”
동찬이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에 곧바로 손이 얼굴에 가 턱에 붙어있는 밥알 한 톨을 슬쩍 떼어 내어서는 손끝으로 튕겨버렸다.
“이놈 봐라! 누가 똥찬이라 안 할까 봐서 귀한 밥알 한 톨을 버리다니…….”
“예? 버리지 그럼 먹어요?”
“그럼, 밥알 한 톨이라도 귀한 것이지. 원래는 네 입으로 들어갔어야 하는 것이 못 들어가서 안타까워하며 붙어있었건만....... 어찌 그 심정을 모른단 말인가?”
“이놈은 내 입안으로 들어올 자격이 없는 놈입니다.”
“허허, 고놈 말 잘하는구먼....... 오늘은 밥알에 대해 이야기해 줄까?”
“네!”
맴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하니, 동찬은 눈이 번쩍 떠지고는 힘이 솟았다. 마침 이쪽으로 오고 있는 동찬의 친구 칠석이와 초등학생 3학년인 그의 여동생을 동찬은 발견했다.
“칠석아~ 빨리 와! 맴 할아버지께서 옛날이야기 해주신데.”
“그래?”
칠석은 여동생의 손을 잡고는 급히 동찬에게로 와 맴 할아버지께 인사를 했다.
“맴 할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이리 와 앉아라! 이뿐이 이름은 뭐지?”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전 소향이라고 해요.”
“소향? 참 매력적인 이름이구나.”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소향(愫香)이라고 지어주셨어요.”
“오! 제법 한자까지 알고 있구나? 참된 향기란 뜻이지. 참 좋은 이름이구나.”
“이제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동찬이가 보채자 맴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소향이 어깨를 다독이셨다.
“우리 소향은 예쁜 이름까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름에 대해 말해주마.”
“뭔데요?”
“음……. 오늘 똥찬이가 턱에 밥알 한 톨을 붙이고 왔단다.”
“할아버지~ 그걸 말하면 어떡해요. 제가 뭐가 됩니까? 으으으~”
“허허, 못난이~ 그런 일로 창피해하면 어째? 그렇지~ 소향아가씨?”
“네!”
“자, 사람은 말이다. 개인마다 이름이 있지? 그러나 동식물에게는 개별 이름은 없단다.”
“우리 집 개는 이름이 있는데요? 점박이라고 불러요.”
칠석이가 자신의 개 이름을 생각하고는 말했다. 동찬이도 소향이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것은 당연하지. 누구의 개인지를 위한 소유권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야. 주인이 바뀌면 이름도 역시 바뀔 수 있는 것이지. 개뿐 아니라 집, 자동차, 땅 그리고 개인 소품 등에도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슬슬 이야기를 풀어볼까? 우리 한국 사람들의 주식은 뭘까요?”
“밥이죠.”
“그래, 밥 또는 쌀이라고 하지. 또는 볍씨라고도 한단다. 그런데 말이야.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하얀 밥그릇에 가득 담겨있는 밥알들이 아우성이었단다. 서로 먼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지.”
“밥알이요? 사람이 떠먹어야 되잖아요?”
“물론 그렇지. 밥알들은 서로 먼저 떠 먹히기를 바라는 것이었지. 그러면 밥알은 사람의 몸을 이루게 되는 축복을 입게 되는 거라고 믿는 거였지. 그것이 밥알의 최상을 꿈이거든. 생각해 봐!”
“음, 그러니깐 밥알은 쌀알에서 왔고, 쌀알은 볍씨에서 왔다는 거네요.”
“오호, 똥찬이 똑똑하군. 사람도 그렇잖니? 아기가 자라면 아이가 되고, 아이가 자라면 소년소녀가 되고,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는 것처럼 말이야.”
“아하! 재밌어요. 논에서 벼가 자라면 볍씨가 되고, 볍씨가 추수해서 쌀알이 되고, 쌀알이 솥에서 밥알이 되는 거네요.”
칠석이가 잘 정리를 해주니 여동생 소향의 눈빛이 달라졌다. 뭔가 알겠다는 눈치였다.
“자자, 이어서 이야기하지. 만복이는 밥상 위에 놓인 서둘러 먹고는 바로 학교로 갔지. 우리 소향이처럼 만복이도 초등학교 3학년이었지.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지. 짝꿍인 순덕이가 만복의 얼굴에 밥알 한 톨이 붙어 있는 것 보았지."
“만복아! 넌 밥을 먹다 말고 왔니?”
“먹다 말고 라니? 싹 먹고 왔는데......”
“아냐~ 아직 한 톨이 남았는데....... 네 얼굴에.”
“내 얼굴에?”
만복인 곧바로 손을 얼굴에 가져갔지. 그리고 얼굴에 붙어 있던 밥알 한톨이를 입으로 가져가 먹어버렸지. 그러자 순덕인 눈이 동그래지면서 큰 소리로 말했지.
“거봐! 넌 밥을 먹다 말고 왔잖아~ 지금 마저 먹었다네!”
그러자 반 친구들이 일제히 만복이를 쳐다보았지. 만복인 으쓱되면서 더 큰 소리로 말했어.
“거 있잖아~ 먼 길을 찾아온 밥알 한톨이가 드디어 내 몸과 하나가 되었다네!”
순덕인 피식 웃고 말았지. 그리고 반 친구들을 둘러보면서 큰소리로 말했지.
“애들아! 아침밥을 학교까지 가져와서 먹는 만복이를 바라~”
반 친구들은 순덕의 말을 듣고는 깔깔 웃었다. 이때에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 자초지종을 다 알게 된 선생님도 웃으시면서 반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후에 이렇게 말해주셨지.
“어떡해요?”
칠석이의 여동생인 소향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맴 할아버지는 소향이를 쳐다보고는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러니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지.”
“애들아! 한 농부가 논에 볍씨를 뿌렸단다. 그런데 어떤 씨앗은 길가에 떨어졌고,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졌고, 어떤 씨앗은 가시덤불에 떨어졌고, 어떤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졌지.”
“맞아요. 길가에 씨앗은 새가 쪼아 먹었고, 돌밭에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 못해 말라죽었고,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도 자라다가 더 자라지 못하고 죽었어요.”
“오~ 우리 반 친구들 똑똑해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비를 맞으며, 햇볕을 받으며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랐어요.”
“네! 그리고 볍씨가 많이 맺혔어요.”
“그래요, 볍씨들은 햇볕을 흠뻑 받으며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소리쳤지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일편단심 사람이 되어지고......”
“멋져요! 우리 친구들~ 볍씨들은 삼십배, 칠십배, 백배로 열매를 맺으며 건강하게 자랑을 했지요. 그러자 농부들이 와서는 볍씨들을 걷어가 타작을 하여 옷을 벗기니 깨끗하게 하얀 모습으로 쌀알로 거듭났어요. 쌀알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고소한 향기를 풍기며 기뻐했어요. 그래서는 이 집 저 집으로 이동을 하여서는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는 가마솥에 모여서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은혜 충만해 탱탱해지면서 온유하고 부드러운 밥알로 거듭났다오. 깨끗한 밥그릇 담겨 밥상 위에 놓이자 서로 저마다 모락모락 김을 내뿜으며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단다.”
“만복이는 밥알 한톨이를 턱에 붙여서 왔데요. 한톨이는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그렇지 않단다. 그 한톨이는 만복이 덕분에 논길도 구경하고 들풀도 구경하고 집집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모습도 구경하고 학교에 와서는 만복이랑 함께 공부하는 모습도 구경했을 텐데...... 만복아! 어떠해했을까?”
“먹어버렸데요!”
반 친구들은 만복이를 향해 손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단다. 그러나 만복은 부끄러워하지 않았지. 밥알 한톨이를 소중하게 생각해서는 다시 몸 안으로 넣어주었지.
“그럼, 한톨이도 만복이와 한 몸을 이루었겠네요?”
“그럼, 한톨이는 소원을 이룬 셈이지. 어때 재밌지 않니?”
“너무 재밌어요. 나도 밥알 한 톨을 얼굴에 붙이고 우리 마을 구경을 시켜주어야겠어요.”
“그래, 우리 소향이 재밌는 친구야~ 그런데 말이야! 똥찬인 그 한톨이는 손끝으로 튕겨버렸어!”
“어머, 오빤 나쁘다~ 어찌 그럴 수가 있어! 한톨이는 버림받은 거잖아! 오빠도 그렇게 될 거야~”
동찬이는 무안해하면서 손으로 머리를 끌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