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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 밝은 해 뜨는 민족

[맴 할아버지의 동화 편]

by trustwons

동쪽에 밝은 해 뜨는 민족

어느덧 선선한 가을이 왔다. 느티나무 아래에도 역시 쓸쓸한 바람이 축 늘어진 가지사이로 스쳐 지날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우르르 떨어지는 나뭇잎들도 떨어져 내린다.

막 추석을 지낸 지 얼마 되지 않는 때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맴도는 녀석이 한 명 있었다. 어릴 적에는 세발자전거를 끌고 돌아다니던 녀석이었다. 좀 컸다고 제법 두 발 자전거를 타고는 으쓱대며 빠르게 달린다.

이때에 느티나무 정자에 묵묵히 앉아서 긴 담뱃대를 물고 뻐끔뻐끔 피어대는 노인이 한분 계셨다.


“고 녀석, 여전하구먼~ 동네가 작으니 다행이지........”


느티나무 정자 쪽으로 달려오던 자전거에 녀석은 노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노인은 손짓으로 이리 오라고 했다. 고 녀석은 동네를 한 바퀴 더 돌고는 노인에게로 왔다.


“맴 할아버지! 왜 불렀어?”

“요놈! 똥차아~ 냄새 그만 풍겨라! 다 알고 있다.”

“뭘요?”

“요놈이 좀 컸다고 능청 부려~”

“능청은 할아버지가 부리잖아요? 오늘은 뭔 얘기 해줄 거죠?”

“이리 와야지~ 뭔 얘기든 할 거 아니냐?”


그때에 저 멀리서 방향 없이 걸어가는 소녀가 있었다. 꼭 걸어도 갈지자로 걷는 것도 아닌데, 똑바로 걷지 않고 이리 깡충 저리 깡충 하며 걸어가는 것이었다. 자전거에서 한 발을 땅에 딛고 서있던 동찬이가 발견하고는 씽 하고 자전거를 타고 소녀에게로 달려갔다. 정말 순간이었다. 맴 할아버지는 다시 담뱃대를 입에 물고는 한번 길게 빨았다가 천천히 입으로 연기를 뿜어내시며 바라보고 있었다.


“소향아~ 어딜 가니? 좀 예쁘게 걸어라!”

“똥찬 오빠~ 나 태워주려고? 고마워.”


소향이는 타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탔다. 동찬이는 할 수 없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소향에게 말했다.


“향아~ 맴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주신데……. 갈래?”

“응.”


소향은 불투명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동찬이는 자전거를 한 바퀴 더 돌아주고는 느티나무 정자에 앉아 계신 맴 할아버지께로 왔다.


“할아버지!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주실 거예요?”


자전거에서 사뿐히 내린 소향이가 맴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면서 옆에 앉았다. 동찬이는 그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는 소향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맴 할아버지는 담뱃대를 거꾸로 돌려서는 돌덩이 위에 톡톡 치시며 담뱃재를 털었다. 그러면서 동네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뭘 뜸 들여요. 향이가 물어보잖아요?”

“응? 소향이가 물었던가? 그래. 별 이야기를 해줄까?”

“할아버지는 별도 아셔요?”

“신라의 쌍둥이 별 이야기란다. 하나의 전설일 뿐이지.”

“어떤 전설이에요?”


이렇게 물어본 소향이 더 궁금해하였다. 그러자 맴 할아버지는 소형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이시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들어봐~ 재밌을 거야. 이건 말이야~ 나만 아는 이야기야. 알았지?”

“더 궁금해져요. 할아버지~”

“그래, 그래, 그거 알지? 우리 민족은 저 먼 나라 서방에서 흘러온 민족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동이족이라 말하는 거예요?”

“오, 똥찬이 똑똑한데? 동이(東夷)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동이(東移)가 맞는 말이다. 원래 동쪽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었지. 서쪽에서 왔다고 해서 동이민족(東移民族)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란다.”

“그래요? ‘동쪽오랑캐’라는 말이 싫었는데, 유대인들도 ‘유태인’을 싫어해요.”

“그렇지! 오랑캐란 욕이나 마찬가지란다. 그러나 유태인은 욕이 아니야. 유태인은 유다인에서 나왔지. ‘유다’란 뜻은 좋은 거지.”

“유다의 뜻이 뭔데요?”


소향이 흥미를 느꼈는지 할아버지의 팔을 당겼다. 사실 소향은 교회를 다닌다.


“유다란 뜻은 여호와를 찬송한다는 뜻이지. 다른 말로 말하면 선민이란 뜻인 것이지.”

“일본 놈이 우리 민족은 ‘조센징’ 하잖아요? 그건 요?”

“그건 욕이 아니야. 사실이지. 조선 사람이란 일본발음이야. 그런데 언어에는 못된 관념을 담고 있거든.”

“그게 뭔데요?”

“같은 말도 쓰기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거든. 예를 들면, ‘개새끼’는 나쁜 말이 아니지. 그런데 사람에게 쓰면 욕이 되는 거야. 그처럼 조센징으로 일본발음으로 쓰면 욕처럼 들리는 거지.”

“그러네요? 근데 왜 욕으로 들리죠?”

“열등감이지. 한편 일본이 본 조선은 명나라 속국이란 의미를 강조한 거지.”

“명나라 속국이라뇨?”

“조선의 이름을 명나라에서 받아왔고, 왕의 통치권한도 명나라에서 승인을 받아야 했고, 그 외에도 많지……. 오백 년 동안을……. 그런 조선을 일본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는 셈이지.”

“할아버지, 이해가 되네요. 듣긴 기분이 나빠도 사실 그러네요.”

“할아버지, 미국인에게 우리가 ‘양키’ 하는 거는요?”

“좋은 지적이다. 양키는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이라 말하지만, 그 원주민들이 서양에서 온 미국인이 쓰는 언어를 칭하여 한 말로써, ‘양키스’라고 한 말이 영국인들이 미국인을 비웃는 말이 된 거지. 그것이 변해서 양키가 된 거야. 미국사람이라고 다 싫어하지는 않지. 느끼기에 따라 다른 거지.”

“그러니깐. 열등감을 가진 자들이 생각할 땐 욕으로 들리는 거네요?”

“그렇지. 똥찬이 잘 정리했어. 이러다가 신라의 쌍둥이별에 대해선 이야기해 주기는 어렵겠네?”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이야기보따리예요!”


소향이는 할아버지에게 안기면서 애교를 부렸다. 맴 할아버지도 싫진 않으신지 소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맴 할아버지는 힘을 주며 말했다.


“이건 확실히 알고 가라! 우리 민족은 동쪽 오랑캐가 아니고 동방으로 이주한 환(桓) 민족이라는 것을 말이다.”


“환민족이에요? 한민족이에요?”

동찬이가 아리송해서 되물었다.


“원래는 환민족이었지. 그것이 변하여 한민족이 된 거지. 환민족이란 유대민족과 비슷하지. 동해에 밝아오는 곳, 또는 하늘이나 하나님의 큰 민족이라는 뜻을 담고 있지. 그래서 단(壇) 민족이라고도 하지. 하늘에 제를 드리는 민족이란 뜻이지.”

“우와~ 우리 민족은 대단한 민족이네요! 자랑해야지~”

“그럼. 자랑해도 돼~ 오늘은 너무 늦었다. 다음에 이야기해 줄게!”

“네! 감사합니다.”


동찬이와 소향은 맴 할아버지께 큰 절을 하고는 동찬이 자전거에 소향을 태우고는 마을로 갔다.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시며 맴 할아버지는 다시 긴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는 뻐끔뻐끔 피우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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