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말하는 안정이라는 불안 ⑪

[우당탕탕 설늙은이] 처음이었어요. 드디어 나를 마주한 것이

by Pabe
[우당탕탕 설늙은이 오디오북]


마주하던 날


갑상선 문제로 약을 먹고 반토막씩 줄어들다가 다시 늘리고 다시 줄이기를 반복하는 그 지루한 과정 속에 나는 초조함과 지겨움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끝은 내가 정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기에, 언제 끝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기다림만을 곁에 두고 바람을 바랐다. 풀이 다 죽어 지칠 때로 지쳐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약을 중단할 수 있었다. 시작도 뜻밖이었고 끝도 뜻밖의 것이었다. 그제야 차오르는 기쁨 같은 것에 신이 났다가 이내 차분해졌다. 들뜬 마음을 식혀 하나의 다짐을 마음속으로 다졌다.


'오래 아파서 약을 먹었으니 앞으로는 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연습을 하자. 그러면 앞으로 아프지 않을 수 있을 거야.'


그 하나의 다짐은 몇 달을 가지 못한 채 몸의 반응들이 터져 올랐다. 순회공연을 하듯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그리고 한의원을 돌며 치료를 받았다. 이 모든 과정을 인내하고 지나쳐 하나의 매듭을 지었는데 혈뇨를 본 것은 내 다짐이라는 선을 넘은 행위였다. 갑상선 문제로 다니던 병원에 가서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쏟아냈다.


"선생님, 제가 사실 손목도 다쳤고 이석증이랑 과민성대장증후군도 왔었어요. 그리고 혈뇨도 나오더라고요."

"아이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울컥한 마음이 지근지근하게 입에 머물다 썰물처럼 저 아래로 사라졌다. 사라져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다 꺼내기엔 적절하지도 알맞지도 않았다. 방문한 목적에 맞게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려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답변만을 받으면 그만인, 그날의 나를 있는 힘껏 계획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참 시간이 흘러 마주한 결과는 지금도 소변에 미량의 혈이 있고 만약 다음에도 혈뇨를 보게 된다면 관련 전문병원으로 바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병원 밖을 나왔다.


이게 하나의 트리거가 되었던 것인지 나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았다. 끝에 다다른 것 같았는데 더 아래가 있었고 그 아래로 향하는 것은 산소마저 사라져 자그마한 의욕도 꺼트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퇴사할 때 생각해 둔 계획들은 몸과 마음이 받아들이고 실행하기에는 버거운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깊은 잠을 자고 또 잠에 빠져들었고 하루, 이틀 씻지도 않으면서 방에 콕 박혔다. 가족들을 대할 때에는 웃으며 대화도 곧잘 나눴지만 내가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이불 위에 누워 멍하니 휴대폰 속 영상들만을 볼 뿐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초조함이라고 해야 할까, 이따금 나는 초조함에 무언가를 계획해서 하고 다시 방전이 되었다. 충분히 쉬고 있는데도 충분하지 않은 느낌, 충전하고 있는데 충전이 더딘 느낌이 들었다. 무엇하나 온전한 것이 없었다.


훌훌 털고 일어나 평소처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어려워진 걸 제일 먼저 느낀 나는 나름의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묘한 감정을 말로 잘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에, 심리학자인 교수님의 영상이나 티비에서 인간을 주제로 대화하는 알쓸인잡을 보면서 나라는 사람이 가진 의문을 풀어줄 것 같은 정보들을 찾았다.


이때 마주한 진실 하나는 이건 더 이상 내 주변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바쁜 일상에 하루하루를 음미할 시간이 없었던 나를 되돌아보면서 알게 된 지식 하나에, 조금은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을 많이 내는 이유는 내 뇌가 상대를 나로 인식하는 정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밖에서는 사회활동이랍시고 온갖 예절을 가져다 보이는데 정작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뱉어낸다니 스스로가 최악이라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나라는 사람 혼자서 오롯이 버텨내는 것이 버거운 나머지 나와 유사한 사람에게 온갖 감정을 쏟고 있었던 것이었다.

말하는 것으로 풀었던 스트레스가 더 이상 풀리지 않음에도 관성적으로 되풀이했던 나는 가족 그리고 친구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지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분명 힘이 들겠지만 뇌과학의 설명을 다르게 대입해보고자 했다. 대입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자고 인지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눈다면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전환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뇌에서는 거의 나라고 인식한다 ▶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한다면 ▶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란 것이 나를 나로서 똑바로 세우지 못해서 빙빙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었고 또 어떤 면으로 보면 이기적인 사람의 생각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말로 풀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말로 풀지 않아야 해결되는 것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나를 구해내고 주변사람들의 부담을 줄이려면 내가 노력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물론, 처음은 어려웠다. 서로에게 질문이 많은 가족에게,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서 한 발자국 멀어지는 것은 부자연스러웠고 하나의 비밀을 마음 한편에 두는 건 꽤 까다로운 일이었다. 또, 이 행위 자체에 대한 독학은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유대감이라는 연결과 초짜의 독립심 같은 게 늘 부딪혔고 활활 불타올라 시커멓게 타버린 나에게 버거운 일이기도 했다.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날들도 늘어났다. 바뀌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름 애를 써본다고 이것저것 해봤는데도 해결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했고 그 끝에는 상담센터가 있었다.

명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센터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에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라고 한 다짐이 산산조각 난 것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20대 초반에 아팠는데 30대에 들어서자마자 또 아프다니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난 분명 또 아플 거야. 친근한 사람들의 말 말고 3자가 보는 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 나는 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오디오북 녹음&편집: Pabe

배경음악: Youtube Music, The Gentlemen-Div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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