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주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 관련 유튜브를 보다가 미니멀리즘을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보았다.
나는 왜 미니멀리즘을 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그전부터 생각은 있었고 또 조금 비우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던 것을 왜 이제 갑자기 나서서 하게 된 걸까?
온갖 것에 다 남자친구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이건 분명히 그의 영향이었다. 하지만 그저 “남자친구가 하니까”는 아니었다. 미니멀리즘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는 사람의 집에 가고, 또 지내 보니 물건이 없는 것이 얼마나 큰 해방감과 안정감을 주는지 깨달은 것이다. 주위에 물건이 없으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러고 보면 난 어려서부터 자유와 해방감을 좇으며 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내 집과 나는 너무 많은 소유물로 묶여 있었다. 일본에 처음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는 24인치 캐리어 하나에 모든 짐을 넣어 갔고 그것으로 1년을 살았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짐이 조금 많아져서 상자 한두 개 정도를 더 부쳤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정도였다.
독립을 한 뒤로는 가구가 생겼다. 빌라였고 수납장이 빌트인이 아니었으므로 가구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가구가 생기니 자연히 그 안에 물건을 채워넣게 되었다. 1.5룸 방이 물건으로 가득해졌다. 지금은 이사를 가야 한다면 물건을 어디서부터 얼마나 정리해야 할지, 어떤 가구를 버리고 어떤 가구를 들고 가야 할지 까마득하다. 어느 날 가방 하나 챙겨 들고 훌훌 떠나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나는 원래 가볍고 간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여행을 갈 때도 웬만하면 캐리어를 가져가지 않는다. 배낭 하나 메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옷은 위아래를 잘 조합해 다른 코디로 입거나 아니면 그냥 똑같은 걸 한 번 더 입고 만다. 셀카를 잘 찍지 않고 여행지에서 내 사진을 남기는 데 관심이 없어서 괜찮다.
그런데 집에 한해서는 그게 잘 안 됐다. 사는 건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 내가 예쁜 걸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아서 좋아 보이는 걸 사들이는 것도 재미있었다. 플랜테리어에 꽂혔을 때는 식물을 호딩하듯 긁어모으기도 했다(슬프게도 많은 아이들이 초록별로 떠났다). 집순이 취미가 많았기 때문에 집에는 그림 도구, 뜨개질 도구, 소잉 공방에 다닐 때 사들인 재료들, 베이킹 도구와 재료들 등등 온갖 것이 다 있었다.
립스틱과 향수를 좋아해서 화장대에는 다른 모든 화장품을 다 합친 것보다 립스틱과 향수가 더 많았다. 미술 전시회에 다닐 때마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이런저런 엽서를 사온 탓에 각종 엽서가 쌓여 갔고 다이어리에 붙이는 스티커도 점점 불어났다.
주방 찬장에는 예쁘다고 사모은 그릇(하지만 잘 깨 먹어서 그릇은 의외로 아주 많지는 않다)과 통일성 없는 커틀러리, 온갖 용기들, 그리고 유통기한이 언제 지났을지 모를 향신료나 식재료들이 빼곡했다. 그나마도 이게 몇 년 전 한 번 대청소를 하며 비운 터라 많이 나아진 거였다.
남자친구의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오피스텔에 있는 가구는 침대와 컴퓨터 책상, 탁자, 책장 네 가지밖에 없는데 그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모니터, 스피커, 키보드, 펜꽂이 하나, 향수 두 병, 티슈케이스가 다다. 탁자 위에는 스피커 하나와 북스탠드 하나밖에 없다. 물론 오피스텔이기 때문에 수납장이 빌트인으로 되어 있어 옷을 수납할 가구는 살 필요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빌트인 수납장을 열어보니 몇 칸 빼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 네 개 가구를 뺀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다.
재택하는 기간 중 이 집에서 며칠을 연달아 지내 보니 다른 물건이 없어도 멀쩡하게 잘 살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있는 그 많은 물건들은 도대체 왜 있는 거지, 싶어졌다. 요리하기가 여의치 않은 건 좀 불편했지만(내게 가장 충격적인 건 이 집에는 소금과 설탕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 집에는 소금만 대여섯가지 종류가 있다) 그것도 ‘냉장고를 부탁해’를 찍는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식자재를 활용하니 재미있는 도전이 되었다. 이를테면 양념이 없으니 수납장 속에 있던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 소스를 활용한다든가, 이미 짭조름해서 간이 필요없는 훈제오리나 베이컨을 구매한다든가.
어쨌든 그렇게 한 번 미니멀리즘의 일상을 체험해보고 나니, 내 집의 물건들이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즐겁게 사들였던 물건들이 이제는 내 발목을 옥죄는 사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음, 왜 미니멀리즘을 하고 싶은가를 내게 되묻는다면, 아마 자유롭고 싶어서인 것 같다. 지금의 상태는 자유롭지 않고 해방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수선하고 정신사나우며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내 주의집중력이 주위 물건에 분산되는 느낌이다. 디폴트로 가동되는 응용 프로그램이 많아서 계속 램 메모리를 잡아먹고 있달까.
그런 고로 아마도 나는 마음이 평온한 어떤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물건 비우기를 할 것 같다. 언제까지 비우기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로 가게 될지 조금 기대된다. 내 집은 올해 말에 이르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려나.
금요일의 난데없는 폭풍 야근으로 시작된 이번 주말은 공모전 소설 쓰기로 다 보냈다. 쉬고 싶은데 주말이 끝나 버려서 슬프다.
공모전을 또 하나 끝낸 건 좋은데 아무리 써도 내 글이 형편없어 보인다. 한 편 완성해 나갈 때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느는 것 같긴 한데, 도무지 얼마나 더 써야 봐줄 만한 글이 될는지 모르겠다.
소설 쓰기는 내가 태어나서 여지껏 해본 모든 것 중 단연 가장 어려운 일이다.
수학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