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침을 맞는다. 눈을 뜨고, 핸드폰 알람을 끄고, 졸린 눈을 비비며 오늘 하루를 ‘또 하나의 반복’이라 여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본다. 오늘이라는 이 하루를, 누군가는 간절히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실제로 많은 이들이 어제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집에서, 혹은 사고의 현장에서. 누구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잘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서 조용히 떠났고, 누군가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했다. 때로는 스스로 생의 끈을 놓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부재는 늘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살아남은 우리는 어쩌면 그들을 대신해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더 치열하게, 더 의미 있게, 더 깊이 있게.
‘오늘’이라는 말은, 살아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선물이다.
우리가 숨을 쉬는 이 하루는, 누군가에겐 마지막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시작조차 해보지 못한 시간이기도 하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꿈을 펴보지 못하고 떠난 이들, 그리고 여전히 생의 문턱에서 버티는 사람들까지.
우리의 하루는 결코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오늘도 회사 가야 하네. 지겹다.’
‘카드값나가는 날이네.’
‘또 빚 갚는 하루겠지.’
이런 말들 대신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하루다.’
‘조금이라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남기자.’
이런 문장을 내 마음속에 새기고 싶은 것이다.
삶은 관점의 예술이다.
같은 하루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색으로 물든다.
내일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오늘을 조금 더 소중하게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건, 누군가의 몫까지 사는 일이다.
가볍게 여기지 말자.
오늘도 삶은 나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