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품고 산다는 말은 어딘가 불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마치 매일 아침, 검은 옷을 입고 관을 메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죽음을 품는 삶’은, 그런 상징적 공포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나는 이 말을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말하고 싶다.
삶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죽음을 함께 데리고 가겠다는 태도.
삶과 죽음은 적과 아군이 아니다. 그 둘은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어떤 일을 마주할 때 거의 본능적으로 나누려 한다.
좋은 일, 나쁜 일. 즐거운 감정, 우울한 감정.
내 편, 네 편. 선한 것, 악한 것.
이원론적 구도 속에서 세상을 해석하려는 것은 아마 인간의 가장 오래된 패턴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 딱 떨어지는 경계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다.
죽음 역시 그렇다.
삶의 반대편에 따로 놓인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 존재하는 어떤 흐름, 어떤 면일뿐이다. 그건 생명의 끝이라기보다, 또 다른 순환의 문이다.
우주를 보면 더 명확하다.
별이 탄생하고, 폭발하고, 다시 흩어져 새로운 별의 씨앗이 된다.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되진 않지만, 어떤 것도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다.
생명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흐름’ 속에 머문다.
죽음은 그 흐름 속의 일부다. 종착역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이전 단계다.
나는 내가 죽을 것을 안다. 그것은 공포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평온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살아야겠다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더 뜨겁게 껴안아야겠다고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다짐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품는다. 그것은 나를 억제하거나 무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삶을 더 환하게 밝히는 ‘불빛’이 된다. 죽음은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음을 통해 죽음을 준비한다.
삶이란 결국, 죽음을 향한 길이 아니라 죽음과 함께 걷는 길이다.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얼마나 깊이 숨 쉬었는가, 얼마나 눈을 맞추었는가,
얼마나 사랑했는가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죽음을 한 걸음 옆에 두고, 생명을 한 모금 더 마시며, 조용히 살아낸다.
죽음을 품은 오늘이,
내 삶에서 가장 따뜻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